조조의 구현령(求賢令) N.O.T.E

삼국지에서 위나라의 토대를 닦은 조조는 210년에, 천하의 인재를 구하기 위한 하나의 발표를 때린다。이른바 능력만 있으면 덕행(德行)에 상관없이 그 사람을 임용하겠다, 라는 -- 그 당시로서는 굉장히 충격적이고 이단적인 선언이었다。이걸 구현령이라고 하는데 어지간한 조조 관련 책들은 이걸 소개하면서, 여윾시 조승상은 킹왕짱이라 어깨춤을 춥니다만。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 구현령은 사실상 구라였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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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데 - 지금 당장 집 근처에 큰 도서관에서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에서 위나라 인물들의 열전을 수록한 위서(魏書)를 펼치고。거기서 동탁, 원소, 도겸 같은 군웅 열전들을 제외하고, 황후나 조씨 황족 일가들의 열전들을 제외하고... 위나라를 섬겼던 신하들의 고향과 '느그 아부지 뭐하셨노'를 쭉 따지면? 위나라 내각은 사실상 후한 내각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현타가 오게 된다。마치 진보를 표방했던 오바마가 내각을 졸라 부자들로 구성하여 "여기가 백악관인지 골드만 삭스 이사회인지 모르겠다" 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것처럼。


하후돈, 하후연은 전한의 개국공신 하후영의 후예
순욱, 순유는 후한 명문가 순씨 일족
쓰마중다(사마중달)는 무려 낙양에 지역 기반(?)을 둔 전통의 청류 가문 출신


특히 위나라 내각을 구성하는 관료 상당수가 예주 영천군 출신이라, 영천군은 위나라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영남 같은 곳이었다는 말씀 =3= 물론 악진, 전위처럼 한미하거나 출신이 애매한 사람들이 출세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역시 군인으로 출세하는 경우가 많았다)。위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조씨와 하후씨에게 군권(軍權)을 맡겼다。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결국 믿을건 가족 밖에 없다는 전통적인 믿음에 조조도 동참했다, 할렐루야。

참고로 이런 조조의 판단도 완전히 틀리진 않았다 - 위나라 정예 기병인 호표기를 조씨 일족이 이끌면서 재미를 톡톡히 봤고。조조 사후에 위나라의 군권은 조진, 조휴, 사마중달이 삼분하고 있었는데 조진과 조휴가 요절하면서 두 사람이 가진 권한이 사마중달에게 몰리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

결정적으로, 아까 말했듯 위서(魏書)에 자기 열전을 가졌을 정도로 위나라에 큰 공을 세운 신하들 중에서 - 인성이 지랄맞은 인사들은 꽤 드물다。다들 청렴했다, 온순했다, 효자였다 - 좋은 말씀들만 가득하고。물론 성질 더러운 인사들이 있기는 있었는데 (곽가라던가, 곽가라던가, 곽가라던가...) 관우나 위연처럼 폭주해서 자기 신세는 물론 국가에 큰 타격을 준, 요즘 같았음 업계 블랙 리스트에 올라가기 딱 좋았을 인사들은 없다。위나라가 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이후로는 유교적 도덕관에 부합하는 인사들이 고위직을 차지했고 그건 주로 누구겠어? 

후한의 청류 가문 출신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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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조가 무능하지만 가문만 좋은 사람들을 뽑은건 절대 아니다 - 어쨌던 조조가 임용했던 인사들 대다수는 난세를 종식시키는데 공헌한 능신(明臣)들이었고。위나라는 삼국 중 가장 큰 영토를 차지했으니 조조의 인사 정책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은 맞다。이거를 무능하지만 가문은 좋은 멍텅구리와 한미하지만 유능한 인재들이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안되고。마치 의사 집안에서 의사 아들이 나오는 것처럼, 관료 가문에서 관료 가문이 나오고 조조는 그 현실을 굳이 의도적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조조는 난세의 종식에는 관심이 있었어도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생각은 없었다는 말도 된다。적어도 조조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렇다。그냥 기존의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두고, 청렴하고 유능한 인사들로만 운영하면 되겠네, 정도? 물론 조조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개혁을 하기는 하는데 - 큰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고, 지엽적으로 문제가 많은 인사들을 혼내는는 정도? 어쩌면, 조승상 정도 되는 인사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호족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했을지도 모를 일 =3= 

물론, 후한은 이백년이나 존속된 왕조이니 조조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하루 아침에 제도를 바꿀 수는 없다。조선도 세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선이란 국가 정체성이 확립되고 고려도 광종에 이르러서야 고려란 국가가 제대로 반석에 오른다。참고로, 고려는 그 지랄을 했는데도 무려 중기에도 백제 부흥운동, 신라 부흥운동이 있었으니... =3= 다만 위나라의 경우, 조조는 물론 조비도 끝까지 위나라, 라는 국가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고 - 위나라는 다만 (거짓말 살짝 보태서) 외척과 환관이 설치지 않는, 황제 권력이 제대로 운영되는 후한 상위호환, 선에서 그쳤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결국은 어리숙한 생각이었다 - 위나라를 엎은 사마씨 일족과 그 사마씨 일족을 지원한 사람들이 대부분 후한 시대부터 명맥을 가진 청류 출신들이었으니... 유능하고 청렴한 청류 인사들로만 내각을 구성하면 국가는 알아서 잘 굴러가리란 발상에 보기 좋게 빅엿을 먹였다。

황제 개인기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조조, 조비, 조예 삼대에는 위나라가 잘 운영될 수 있었으나 그후 어린 황제가 즉위하자 순식간에 판이 다 엎어지는, 후한보다 더 지독한 막장 국가로 변모하는데 30년도 걸리지 않았고 조조가 그 원죄를 지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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