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빛나는 문학] 사랑 받지 못할 남자 N.O.T.E


빛바랜 적색이 밤에 물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인적 없는 스산한 주택가의 골목길에서 
- 앳된 외모의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ㅇㅇㅇ씨죠?
남자는 긍정한다 - 검은 머리, 검은 눈, 검은 코트, 검은 장화를 신은 여자는 그 남자가 처음 사랑했던 여자의 동생이라고, 부고를 전한다
언니는 죽었다, 당신의 첫사랑은 언니의 세번째 애인에게 죽었다

언니는
대학 공터, 버려진 연극 무대, 싸움으로 유명한 중학교 운동장, 빨간 사진첩, 그리고 언니가 일하던 카페의 뒷마당에 묻혔다
내일은 언니의 시체를 태우니 당신도 필히 와주길 바라

그러나, 남자는 울지도 말하지도 않고, 다만 무시하고 발길을 재촉했지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냐는 사람들의 얼굴을 뒤로 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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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한 남자는, 방문 열쇠를 신발장에 올려두고, 커튼을 열면 옆집에게 거실이 모조리 노출되는 그런 작은 집에 사는 남자는
냉장고를 열어 김 빠진 다이어트 콜라 오백 밀리리터 하나를 꺼내, 원래는 위스키를 담으려는 유리컵에
각진 얼음을 하나, 둘 더 넣고는 콜라를 오분의 사까지 가득 채우고는 천천히 마신다
그러고는 목공이 직접 깎아 만든 투박한 나무 의자에 몸을 기대어, 끈적한 먼지 가득한 시계로 시침이 스물 세번 돌았음을 보고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묽으스런 오줌을 졸졸 쏟아내고는
물을 내리고는 따뜻한 물에 손을 씻고는 -비누는 쓰지 않고- 수건에 슥슥 닦고는 화장실 문을 닫고는
시원한 트름과 함께 몸이 신선처럼 가벼워지는 착각에 취해 바닥에 이불을 깔고 소등하고 잠들었다

남자는 다음날 아침 짜장면은 만들지 않는 중국집에 가서 닭튀김 반마리와 카레, 돼지고기 볶음을 주문해서 콜라와 함께 먹었다
- 열심히 일한 남자가, 지갑에 조금 여유가 있는 자신에게 주는 아주 약간의 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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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첫사랑을 위해 오열을 터뜨린 것은
그로부터 한달 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여자와의 두번째 주말 데이트 밤의 일이었다

여자와 남자는 함께 카페에서 음악과 영화, 자신들의 학생 시절을 한창 떠들다가 - 그만 막차 시간이 지나버리고야 만 것이다
당황한 남자에게, 여자는 팔짱을 끼고는 모텔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저기서 좀 쉬었다 갈래요?


그녀의 손 끝이 가리키는, 모텔의 끝에는 첫사랑의 얼굴처럼 둥글고 환한 보름달이 푸른밤을 은은히 적시고 있었으므로
달덩이 같은 그녀를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던 남자는 울음을 터뜨리고는
미래의 아내가 될 수도 있었던 여자를 소박 맞히고는, 첫사랑의 집으로 달려가

그녀가 어디에 묻혔는지를 알고는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건내주려고 했으나 - 이미 그 집은 언니를 찾으러 지하 세계로 떠났으므로

드릴은 커녕 삽조차 갖추지 못한 남자는 결국 용식함지 앞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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