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VS 도올 김용옥: 도덕경의 해석 N.O.T.E


한국에서는 유/불의 영향력이 강해 도(道)가의 가르침이 크게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 중국에서는 중국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덕경을 뺄 수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지

문젠 도덕경 요녀석, 5천자로 구성된 한편의 장엄한 시(詩)라서 해석이 알쏭달쏭이다 - 원래 경전이란 물건이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말하지만 이건 그 중에서도 끝판왕 레벨로.. 오죽했음 이걸『대국론(大國論)』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원시 공동체 회귀를 주장하는 강력한 반(反) 문명주의』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다들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누군가는 제국주의를 누군가는 아나키즘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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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은 도덕경을 아나키즘/반(反) 문명의 철학으로 해석하며 그 근거로 소국과민(小國寡民)을 말한다


『나라는 작게 쪼개고 백성은 적게 하라』
-- 이것은 중국이 추구하는 대국론(大國論)의 안티테제에 다름 없다는 것이다. 통일된 강력한 단일 질서가 중국 전역을 통치하는 것을 늙은이/노자는 반대하고 유럽이나 춘추 중국처럼 지방이 자치(自治)하되 그럼 춘/전 시대처럼 전쟁으로 개판이 될 수 있으니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그 지방 국가들이 정치를 잘해서 백성들이 이웃 국가에 왕래하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게 하자!


철저하게 고립된 목가적인, 분권 질서를 이상향으로 여겼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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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강신주는, 도덕경이 차이니즈 제국주의(도올의 표현을 빌리면 대국론大國論)의 철학이라고 공격한다 - 그럼 강신주는 도덕경에게 엄연하게 실존하는 이 『소국과민』이란 최대 강적을 어떤 식으로 돌파할까





소국과민을 마치 전성기 로마 제국이 이민족을 괴롭히던 분할 정복의 책(策)에 지나지 않았다구 평한다 - 여담으로 강신주는 장주야말로 진정한 아나키즘하며 이런 이유로 노자와 장주를 같은 학파로 묶어서도 안된다고 늘 말해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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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간의 해석차이가 심각하다, 이럴 때는 역시 역사적으로 들어가야지! 

중국 역사에서 반(反) 국가 성향이 있었던 지식인들은 늙은이(노자) 철학 공부했다 - 여기까지만 보면 도올의 해석이 맞는 거 같지만


강신주의 반론도 들어보소 - 
『노자 철학이 반(反) 문명, 반(反) 제국주의라면 
그럼 왜 전국 말기 법가부터 도덕경을 수용했으며 역대 중국의 제국들이 그 사상을 방치했는고?


이 말도 맞는 것이, 중국은 진시황 시대부터 이미 강력한 사상 탄압을 전역에서 행사할 수 있는 집행력을 갖추었다 - 분서갱유 속에서 여러 도가 사상가들도 피해를 입었지만 한(漢) 제국 이후로 도가는 탄압받지 않고 지배층이 도가 사상에 심취하고 유교 못지 않게 열심히 연구한다 - 한나라 초기에는 유교가 아니라 도가 철학으로 국가를 운영했으며 유교에게 헤게모니를 넘겨준 이후로도 여전히 도교는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지

도덕경의 집필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전국 말기에 법가 사상가들이, 그 엄혹하다는 법가 사상가들이 도가 사상을 국가 통치의 술(術)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 시도는 꽤나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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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8/04/08 13:51 # 삭제 답글

    도가의 해석 자체가 두가지 다 되는 양면적인 모습이 있잖아요.
    그런 도가 같은 사상은 하나의 잣대로만보면 위험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한초기는 진의 통치에 힘들었던 백성들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황로사상을 채택한 것이고 도교의 생성은 아래에서 생성된 것이라 지나친 일반화같은데요
  • 말초 2018/04/08 14:32 #

    저는 도올의 해석을 더 신뢰합니다 ㅎㅎ - 만약 노자가 강신주의 해석대로 제국주의를 찬성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럼 굳이 소를 타고 함곡관 밖으로 사라질 것이 아니라 공중니처럼 수레를 타고 함곡관 안으로 들어갔어야죠. 제자백가들이 모두 벼슬을 하나 구해보려고 각지를 유랑하며 유세했는데 노자는 책 한권 홀랑 남기고 훌렁 사라졌습니다.. 중국처럼 세속적인 정서가 강한 문화권에서 지식인이 관직을 포기하는건, 엄청난 용기와 결심과 각오가 요구되는 일인데 제국주의 옹호를 위해서 그랬을까요?

    한초기 황로 사상은 위민(爲民)의 목적이 있었던 것도 맞지만 -- 아직 한제국의 역사가 짧고 군국제를 실시하여 국가 권력이 강력하지 않아 국책 사업을 시작할 수 없어서 그걸 정신승리 치려고 황로 사상을 빌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황로사상은 한무제가 즉위하고 섭정 두태후가 죽으면서, 유교에게 자리를 내주는데 한무제가 즉위했을 적에는 오초칠국의 난이 이미 평정됐고 비로소 한나라의 권력이 통일제국의 위상에 맞게 성장했습니다. 한무제는 흉노 정벌 등 다양한 국책 사업을 벌리는데 그 시점에서 황로 사상이 내쳐지는게 이런 이유라고 하네요
  • 무간 2018/11/05 20:34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노자" 키워드 검색으로 들어왔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유 되실 때, 한 번 둘러봐 주세요.
    늦가을... 쌀쌀하네요. 건강 잘 챙기세요.
    도덕경을 중심으로 인문고전을 번역해서 출간하는 1인 독립출판입니다.
    http://cafe.daum.net/SpringandStarinJi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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