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의 눈물 N.O.T.E

싱글벙글 초한지

내가 어렸을 때 만화로 된 초한지 같은거 읽으면 - 유방/유찌찌를 덕(德)의 화신으로. 항우를 무(武)의 화신으로 그렸다

故 고우영 화백은 아예 삼국지 유비를 그려놓고 유방이라고 이름만 바꿨다 (진짜로 유방, 유비가 똑같이 생겼다). 요코하마 미스테루의 만화 초한지도 그랬다지

-- 그래서 막판에 유방이 공신들을 마구 죽이는 후일담/에필로그에 도저히 적응을 못했다. 무슨 귀무자도 아니고 유방이 악마에 씌여 고제(高帝)가 아니라 뇌제(雷帝)처럼, 정신줄을 놓은 것만 같았거든. 여에 고전 소설에 뭐 복선이나 심리 묘사 같은게 있어? 유찌찌가 햄릿 대사 씨부리는거 봤냐고. 그냥 사람이 갑자기 180도 바뀡께 황당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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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은 덕(德)의 화신이 아니다! - 이 사람은 건달에 진나라 정장이 되면서 정치에 입문하는데 정장이란 순경(경찰관)에 관할의 숙박업소 관리까지 겸하는 하급 무관이다 - 관할에 도둑떼가 출몰하면 유방은 칼이나 몽둥이 들고 뛰쳐 나가서 그들과 칼부림을 벌여야만 하는 그런 위치에 있었다

마치 해방 전후 김두한이나 이정재처럼 - 진나라, 그 혹독하다던 the 진(秦)에서 건달에 순경이라면 세간의 생각과는 달리 꽤나 느와르적 소싯적을 보내지 않았을까 

초한지에서는 건달, 정장은 다 명함에 지나지 않고 맨날 술먹고 뽕짝 부르며 놀았다고 하더만 유방의 삶을 보면 이 사람의 인성은 뭐라지? -- 배우 김윤석이 분한 악역들의 잔혹성을 받되 그래도 양심은 좀 있고 저축은 하지 않는 ... 그러면서도 해야만 한다면 자기 부하를 가차없이 절지(絶指)하는 그런 인성의 소유자였다

여기서 포인트는, 유방은 절대로 자기 손가락을 자르지는 않는다! - 그럼 보통 이런 놈들은 부하 총맞고 뒈지는게 전통 느와르물의 사필귀정이라 할 수 있겠지만 유방은 호탕하게 그 원망을, 항우가 자살하고 자신이 중국의 군사력을 다 장악하는 그 시점까지 미루고 관리하는, 그 능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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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면 이렇소


실화 극장 하나.
지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A가 유방에게 투항했는데 B도 유방에게 투항할 예정이다 -- 그런데 B는 A와 구원(舊怨)이 있어 자신의 투항을 원한다면 A의 목을 베라고 요구한다. 유방은 A와 B가 둘 다 필요한 상태. 그래서 유방은 A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 하나를 구해서 그 목을 잘라다 B에게 보냈다 

 
실화 극장 둘.
유방이 추격군에게 쫓겨 정말 잡힐 위기에 처했다. 이때 유방은 가족들과 수레를 타고 있었는데 수레 무게를 줄여 속도를 늘리겠답시고 자녀들을 수레 밖으로 내던졌다. 원래 장군이나 왕은 자녀가 많으니 그럴수도 있는게 아니라 여기에는 훗날 2대 황제로 즉위하는 장남 유영도 있었다. 


실화 극장 셋.
토사구팽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실화 극장 넷.
자신과 함께 고생한 아내 여치가 나이를 먹어 외모가 쇠하자 젊은 척부인을 총애한 것도 모자라 척부인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고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실화 극장 다섯.
유학자들을 싫어해서 유학자를 보면 갓을 빼앗아 오줌을 갈겼다 - 참고로 공자의 제자 자로는 전쟁터에서 죽을 위기에 처하자 선비는 죽어도 갓을 삐뚤어 쓰지 않는다며 갓을 고쳐 쓴 다음에 장렬하게 전몰(戰歿)


자기 아버지나 마누라(여치)가 항우의 포로로 잡혔을 적에도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고 (속으로는 마음은 아팠으나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태연한척 연기를 했다고는 하지만...) 항우에게 포위되자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부장을 성에 남겨두고 도주하던.. 이쯤되면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의심되는 그때 그 사람~ (하긴, 제왕들 중에서 누가 반사회적 성격 장애가 없기는 하겠느냐만서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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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공중니나 노자/늙은이에게 유방은 저얼대로 그들이 소망하는 군주하고는 180광년쯤 거리가 있는 진짜 날건달에 지나지 않는데 유방이 덕(德)이라는 프레임이 생긴 원인은 상대적으로 항우가 인간 관리를 더럽게 못해서 발생한 반사 효과 같다


항우의 말년에, 초나라 개국공신들이 대대적으로 이탈한다 - 영포, 계포, 팽월, 범증.. 다들 항우를 떠나서 항우 최후의 전투라 할 수 있는 해하전에서는 초나라 네임드가 항우말고는 없다



출처는 나무위키 - 한나라 진영은 한신, 관영 같은 한나라 명장부터 영포, 팽월, 여마동 같은 전직 항우군 출신까지 있다..! 삼국지 게임에서 이들은 고대 무장으로 졸라 쎄다. 영포는 오호장군과 비빌 수 있는 무력 보유자. 한신은 무력은 낮지만 90 이상의 지력 보유. 관영은 삼국지에 조자룡이 있음 초한지에 관영이 있다고 할 정도로 준수한 A급 파이터다 

한나라 어벤저스를 상대하는 초나라는 항우 혼자 쓸쓸하게 10만을 이끌고 있다 - 여기에 유방에게는 소하라는 치트키까지 있었으니 천하의 항우라도 당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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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는 절대 비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 귀족 출신으로 다정다감하고 공감도 잘해서 부하가 아프면 울면서 약과 자기 먹을 음식까지 보내는 사람이었다. 이게 뭐 대수냐고 할 수 있는데 왕조 시대에서 신분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반찬 가짓수가 법으로 엄히 규제되어 있었으며 이거 어기면 반역죄로 사형이다. 궁예나 정조 같은 제왕들이 자기 음식 아끼는게, 괜히 그런게 아니야요


그런데 항우는 포상 문제에서 지나치게 쪼잔했다. 한신의 평가를 빌리면 인수(도장. 옥새가 황제를 상징하면 인수는 관료를 상징)를 줘야하는데 그걸 닳고 닳을 때까지 만지작 만지작 거리면서 결국 주면서도 한숨을 푹푹 쉬더라

영포, 팽월 같은 초장(楚將)들이 항우를 배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이들은 항우가 주는 약이나 밥이 먹고 싶은게 아니라 관직이 먹고 싶은데 항우가 그걸 안주니까 삐친거다, 에잉..


반대로 유찌찌는 절약이란 개념이가 없었다 
- 장량의 평가를 빌리면 유방은 사람이 오만하고 난폭해서 천하의 인재들이 다 유방을 피한다. 지금 유방 곁에 남은 사람들은 유방이 주는 떡고물이나 맛뵈려는 소인배들에 지나지 않는데 유방이 보너스며 팁을 화통하게 쏴서 그 맛에 유방을 섬긴다

사마천은 유방이 말(馬)이라면 하후영 같은 놈들은 말 궁둥짝에 붙은 똥파리 같은 하찮은 것들이라는, 후손에게 칼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혹평을 남기셨다


유방이나 항우나 인간 관리를 참 더럽게 못했고 초한지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적어도 인맥전(戰)에서는 고교 야구나 동네 조기 축구처럼『누가 더 잘하느냐』영웅전이 아니라 『누가 더 못하느냐』의 머저리전이었다 

- 그럼 왜 항우는 음식과 약에는 욕심이 없으면서 관직에는 저렇게 찌질했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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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초한지에서 난세를 틈타 뛰쳐나온 대부분의 닝겐들은 다들 황해의 면가 같은 싸패들이었다 - 장량, 범증 같은 소수의 사람들이 이 난세를 종식시켜 천하를 구제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번쾌, 영포, 팽월 같은 사람들.. 건달, 범죄자, 도적 출신이다 -- 그래서 항우도 그렇고 유찌찌도 그렇고. 부장들이 정말 더럽게 개겼다

한신은 유찌찌가 위기에 처하는 순간마다 연봉 협상을 걸었고 결과가 나쁘면 그대로 파업에 들어갔다 - 항우는 본인의 굇수 같은 군사력으로 제장들의 반골을 억눌렀다면 유찌찌는 그럴 능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달라는 대로 삥을 뜯긴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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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의 제장들이 항우를 이탈하게 된 결정적 사건은 항우의 제후 분봉이다 - 항우가 진나라 끝내고 본인은 초패왕 되고 그동안 수고한 제장들을 봉건 제후로 봉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두가지를 문제 삼는다지


1. 군현제를 폐지하고 봉건제의 부활
2. 공과 상의 불균형


중국에서 특히 민족주의나 우파 성향이 강한 학자들이 항우를 복고주의/보수로 몰아서 깐다 - 만약 이대로 갔음 중국이 유럽처럼 분열될 수 있는 그 오싹함은 이해하되 그 시절에 장량 정도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참모들이 봉건제 부활에 찬성하고 있었다 -- 진나라가 군현제 돌렸더니 씨볼 대륙 단위로 노동력 징발해서 대륙 단위로 아방궁 처짖고 대륙 단위로 세금 뜯고 대륙 단위로 학자들 두꺼비 집으로 보내고 대륙 단위로 책 불태우고 .. 고로 지방에 거주하던 귀족들이 군현제 폐지를 강력하게 소망했다

the 장량조차도 군현제와 봉건제를 반씩 섞은 군국제를 프로포즈했고 - 항우의 대참모라는 범증도 군현제를 찬성했단 말이 없다! 고로, 군현제 부활로 항우를 까는건 그건 좀 아니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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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턴 살짝 음모론 -- 논공행상에서 공정성 결여를 근거로 항우에게 제왕의 자질이 없음을 까는데 그게 만약 항우의 『빅 픽쳐』라면요?

반진(反秦)의 기치를 최초로 든 진승은 막판에 제장들을 통솔할 수 없었다 - 제장들이 멋대로 장군이나 왕을 칭하고 진승의 명령을 듣지 않았으며 결국 진승과 오광 모두 부하들의 배신으로 죽거든

앞서 말했지만 이 시대 뛰쳐나온 것들은 대부분 혼란을 틈타 한탕 크게 치려는 소인배들에 지나지 않았고 유찌찌도 나중에 한신, 영포, 팽월... 다 정리한다

아마도 항우의 정국 구상은, 믿을 수 없는 날건달 같은 놈들에게 토지를 적게 주고, 그대로 정국을 굳혀 난세를 쫑내겠다는 책(策)이 아니었을까 - 여기서 항우의 그릇이 나오는데 항우는 최소한 죽이지는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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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드라마가 아니라 소설에서, 소년 이순신과 아버지 이정이 항우와 유방에 대해 토론하는데 소년 이순신이 항우가 유방보다 더 좋은 군주라고 -- 유방은 부하들을 죽였지만 항우는 죽이지 않았다고, 유방은 의리가 없다고 말하거든

이정은 조선같은 왕조 국가에서 반역자를 정통국의 시조보다 높게 평가하는 아들에게 감탄하면서도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데 --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다

공신들 삶아 죽인 유방이 과연 항우에게 덕(德)이 없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고 - 항우가 난폭했다지만 적에게, 진나라에게만 난폭했고 항우의 그 난폭함이 진나라를 단기간에 족친 승리 비결이 되기도 했다

초한지를 읽으면, 아무리 봐도 이건 유건달이 어떻게 나라를 도둑질 했는지, 그 썰을 유방의 입으로 듣는거 같아서.. 삼국지보다 엔딩 뒤끝이 더 더럽다 - 그래도 사마씨 일문은 팔왕의 지랄로 망하는거 보는 재미라도 있는데 이 자식들은 사백년간 승승장구를 해요, 또

결국 유건달이 세운 한나라는 조건달 손에 끝나면서 아하 신나는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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