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라는 아프고 적은 백성은 봉사한다 N.O.T.E




강신주 VS 도올 김용옥: 도덕경의 해석

지난번의 도덕경의 해석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가설을 소개했지。먼저 가볍게 복습

도덕경에 소국과민(小國寡民)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나라는 작게, 백성은 적게", 질박한 원시 공동체로의 회귀를 노자/늙은이가 이상 국가로 여겼다는 설이 있는가면 분할 통치술 -- 백성들이 단결하지 못하도록 쪼개자는 마키아벨리 싱글벙글 정책이란 설이 대립하고 있다。

지난번에 나는 노자/늙은이가 특별히 역사의 전면에 나설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 - 첫번째 주장이 더 신뢰할 수 있다고 했지만。반론도 있다 - 늙은이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도덕경은 전면에 나서는걸 금기로 여기고, 도덕경에는 세계를 바꾸지 않음 안된다는 글쓴이의 의지와 야망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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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 늙은이 정도 되는 철학자가 시의 형식을 빌어서 모호하게 세계의 요체를 설명했다면 - 그러면 그 모호함 그 자체가 늙은이의 참뜻이 아닐까。

늙은이가『전쟁은 전쟁을 불러온다』고 말하면 - 어떤 제왕은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겠지만。어떤 제왕은 적국과 주변국을 이간질시켜 끝없는 전쟁 상태로 몰아 자국의 부전승을 시도하겠지。늙은이는 어디까지나 현상만 말하고 그 현상을 어떤 식으로 이용할지는 철저하게 읽는 사람에게 맡겼다 - 늙은이는 어디에도 진정한 의미의 도덕이란 없으므로 첫문장부터 '도가도 비상도' 라고 당부하신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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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과민을 어느 쪽을 해석해도 그것이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긴 어렵지 
- 동양 철학은 자꾸 과거에 정답이 있다는 기괴한 보수성을 가지는데 (특히 유교!) 

원시 공동체에서 노예제 사회로,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제 사회로 역사가 흐른 그 사유을 사유하지 않는다。과연, 무작정 과거로 돌아가는게 정답일까。노자의 생몰년도는 불확실하지만 공중니와 비슷한 시대, 춘추 말기로 추정되는데 적은 백성들로 운영되는 작은 국가가 대국의 침공에 한방에 훅 간다는 그걸 정말 몰랐을까 

통치술로 해석해도 - 이건 도가도 비상도 철학에 바로 위배된다。언젠가 세월이 흐르면 백성들이 단결하지 못함으로서 막을 수 없는 문제가 닥칠테고 그럼 그 나라도 그대로 기울겠지。마치 주나라의 봉건제나 정전제가 한때 반짝했으나 지속되지 못한 것은 -- 더 이상 봉건제와 정전제로는 유지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가 왔으니까!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도는 도라고 불리는 순간 도가 아니라는 - 절대성의 부정에는 도덕경도 예외가 아니다。도덕경도 도라고 불리는 순간 더는 도가 아니게 되는 날이 온다。

현재로서는 질박한 삶, 지나치게 발전한 문명의 다음 단계가 그닥 좋지 않을수도 있다는 은유이며 - 이 현상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진 읽는이의 몫으로 늙은이가 남겼다, 늙은이는 오독을 걱정해 미리 첫문장부터 당부했다 정도로 요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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