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국과민 파이널 N.O.T.E




작은 나라는 아프고 적은 백성은 봉사한다

벌써 5월 1일에 소국과민 글을 쓰고 잠수탔지만 - 그후로도 도덕경 공부는 계속 하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했는데 소국과민은 노자/늙은이의 의지가 아니라 후대 누군가의 주작이다, 하느님 맙소사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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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도덕경은 중국 위나라의 천재 유학자 왕필이 주석을 단 도덕경, 왕필 도덕경이다。왕필 도덕경은 오천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나라 초기 사학자,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 "노자가 오천여자로 된 도덕경을 집필했다"는 기록과 일치한다。그런데 93년도,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 무덤이 발굴됐는데 거기서 죽간으로 된 도덕경이 출토된다。문제는, 이 죽간 도덕경은 이천자 밖에 되지 않는다。

발굴된 죽간 도덕경과 왕필 도덕경은 이런 차이가 있다


1. 분량 차이
2. 죽간 도덕경은 구체적이지만 왕필 도덕경은 선문답 문장이 대폭 추가
3. 죽간 도덕경은 유교를 크게 공격하지 않는다


가장 도덕경에서 잘 알려진 반(反) 유가적 구절。"큰 도가 폐하니 인의가 생기고"가 죽간 도덕경에는 "큰 도가 폐하니 인의가 있겠는가"였고 "국가가 혼란해야 충신이 나온다"는 원래 "국가가 혼란하니 바른 신하가 있겠는가" 였다。도덕경 특유의 역설과 모순의 맛이 확 줄었다

그리고, 죽간 도덕경에는 소국과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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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소국과민은 후대의 누군가가 주작한 경구라고 하는데 (이 사람을 사짜라고 하겠다) - 비록 사짜라도 도덕경의 역사가 너무 유구해서, 무려 1,800년 묵은 조작이라 이 정도면 조작이라도 역사적 값어치가 있는 조작이 된다。뭣보다두 소국과민은 왕필 도덕경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비중 있는 구절이 아닌가 =3=。그럼 the 사짜는 무슨 생각으로 소국과민을 넣었을까

원시 공동체를 이상향으로 여기는 마음? 우민정치를 찬성하는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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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분명한 것은, 만약 이 소국과민이 지배층이 보기에 거슬리는 대목이라면 - 그럼 이 사짜는 곱게 죽긴 글렀고 도덕경도 모두 불타는 참극을 면치 못했으리라。이미 중국은 진시황 시절부터 국가에 거슬리는 책과 사상가를 전역에서 색출해 삭제할 수 있는 통치력을 가졌다。물론 묵자, 맹자처럼 엄혹한 검열 포위망을 돌파한 책들도 있지만 - 만약 도덕경이 그런 탄압을 받았다면 역사서에 기록이 남았으리라。그런데 그런 역사 기록이 없다는건, 소국과민이 지배층 기준으로 불온한 주장은 일단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론 소국과민이 원시 공동체를 이상향으로 그리워하는 구절이라 확정할 수도 없다 - 과거를 그리워하는 동양 철학의 특성상 그냥 옛날이 살기 좋았다는 넋두리 정도로 가볍게 넘겼을수도 있고。진짜로 우민 정치를 찬성하면 그럼 도덕경을 탄압할 이유가 더욱 없지。

죽간 도덕경은 왕필 도덕경과 비교하여 역설이나 모순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함축적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단어 하나만 다르게 해석해도 문장의 뜻이 완전히 바뀐다。노자의 진심을 포착하기란 지금 이 시점에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사짜가 원시 공동체를 그리워서 조작질을 했어도, 여기서 그럼 중국의 원시 사회는 정말 이상적이었는지, 그렇지 않다는 반론이 이미 전국 말기 법가들이 주장하고 있었거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2), 죽간 도덕경이나 왕필 도덕경이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지배층이 읽을 것을 감안해 저술된 책이며 일단 지배자가 헛된 욕심을 버리고 자연스러움에 의지해 아랫사람의 자발성을 이끌어야 나라를 잘 운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이미 전국시대 말기 다른 학파도 아닌 무려 법가가 노자의 가르침을 적극 수용했다 - 마키아벨리즘과 서로 통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었음은 확실한 것 같다

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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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8/05/29 01:00 # 삭제 답글

    자연스럽다? 소박한 삶?을 추구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선 딱히 터치하지 않은 것 아닐까요?

    약간 딴 얘기로 노자의 도에 대해 모두들 그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있었기에 말그대로 백가쟁명의 해석이 나온 것 아닐까요?
    정작 저도 제대로 된 답은 못 내리겠지만
  • 말초 2018/05/29 07:27 #

    본문 마지막을 수정했습니다 - 자꾸 사짜와 노자를 노자라고 썼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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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성인은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을 도울 뿐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

    바름(正)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기이함으로써 군사를 부리며
    일하지 않음으로써 천하를 얻으라.

    내가 어떻게 이러한 이치를 아는가.

    대저 임금이 바라거나 꺼리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백성들은 더욱 가난해지며
    백성들에게 편리한 물건들이 많아질수록
    나라는 더욱 어지러워지며
    사람들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기이한 것들이 더욱 일어나며
    법률이 요란할수록 도적들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나서서 일을 벌이지 않으면
    백성들은 스스로 넉넉해지고
    내가 무위에 머무르면
    백성들은 스스로 다스려지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올바르게 되고
    내가 바라지 않기를 바라면
    백성들은 스스로 순박해진다.


    지금 이게 죽간 도덕경 해석본입니다만 : https://blog.naver.com/gogo9th/40132474620

    원시 공동체를 지향한 것은 맞고, 뭔가를 통제할수록 국가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것도 맞습니다 - 그런데 백성들이 아는게 많을수록, 문물이 발전할수록 안좋다는 말도 직접 하고 있어요。그래서 노자는 지도자가 욕심을 버리고 일을 벌이지 말라고 하는 결론을 내리는데 .. 뒷맛이 깔끔하지 않죠

    이거 외에도, 노자(죽간 도덕경)는 계속 발전해서 전성기에 도달하는걸 경계하는데 (전성기를 찍으면 내려올 일만 있으니까) - 원시 공동체든 우민 정치든 반동(反動)적인 성격이 있는건 사실입니다 (여기서 반동은 중립적인 의미)。그리고 반동의 성격은 거의 대부분의 동양 철학이 다 공유하고 있는거라 노자를 욕할게 아니라 동양 철학 전체를 다 욕해야 합니다 ㅠ
  • 존다리안 2018/05/29 08:51 # 답글

    그러고 보면 국민이 자연스럽게 세뇌되어 지도자를 따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중국공산당도 아니고....
  • 말초 2018/05/29 10:01 #

    원래 동양 철학이, 백성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 법가는 상벌, 유교는 통치자의 모범적인 행동, 도가는 자연스러움으로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자는 거죠。중국의 황제들은 전부 다 구사했습니다 ㅠ

    가령 유교로 치면, 주말에 늦잠자고 싶은데 부모님은 일찍 일어나 거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서, 분위기상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억지로 공부를 하는 것도 자발적인걸로 치고。그렇게 모든 가족이 공부했으니 그럼 좋은게 아니냐는 정서도 있습니다 - 공중니는 그래도 되게 공감 능력이 강한 분이라, 아마 이런 상황이 오면 애 좀 재우라고 화를 낼 사람이지만 후대에는 유교가 정치 권력과 결탁하면서 아버지가 아침부터 공부하는데 어딜 감히! 일어나! ㅠ

    - 병가에서는 오기가 병졸의 종기를 빨아서 그들이 오기에게 충성을 바쳐 전쟁에서 자발적으로 죽게 만들었죠..
  • fff 2018/05/29 14:24 # 삭제 답글

    서양이라고 그게 별반 다르진 않죠. 강제적 무력으로 하려면 비용과 소모가 끝이 없기 때문에 피지배층 따위가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드는게, 그걸 위한 논리를 공고히 하고 대중이 깊히 빠져들게 만드는게 중요했으니까요. 그걸 위한 이데올로기였으니.

    또 그게 국가 내에서의 통치 뿐만아니가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하니 그게 잘 되면 팍스 로마나나 팍스 아메리카나가 잘 통용되는거고, 실패하면 그 질서가 흔들리게 되죠....
  • 말초 2018/05/29 15:26 #

    제가 서양 철학은 관심이 있지만 서양사는 잘 몰라서 ㅠ

    그런데 일단, 뭐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 동양의 자발성은 시혜로 피지배층을 감복시키는 - 수직적 형태라면 서양의 자발성은 계약으로 이뤄진 수평적 형태인 것은 아닌가..
    물론 서양도 신분제, 계급제 있고 십자군에 참가한 사람들이 돈이 아니라 진짜 종교적 열성에서 참가했다는 기록도 많이 나왔으니 저도 정답이라 당당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3=

    서양의 자발성은 "이거 하면 이거 줄게"의 형태였고 동양의 자발성은 "(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이렇게 하는데 너는?"의 형태였던 거 같습니다
  • fff 2018/05/29 20:37 # 삭제

    그게 따져보면 따져볼수록 애매해지거든요.

    가령 동양은 공사 구분을 못해, 같은 소릴 예전에 많이들 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사실 공사구분 안하기는 서양쪽이 갑이었고 동양은 훨씬 양반이었거든요. 과거제, 만다린 따위로 대표되는 제도나 맹자의 역성혁명이니 하는 유학적 이념, 국가가 백성을 위한거라고 적어도 이념상으론 제시하기나 한것에 비해 서양쪽을 비교해보면 이건 보면 볼수록 그냥 막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또 한단계 더 들어가 생각해보면, 현대와 이어지는 프라이버시 따위와 연결되는 그 이념적 사상사를 보면 어떻게 또 그것만이 아닌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보면 볼수록 이게 애매해지죠.

    가령 그 계약, 약속이란게 어릴때 부모님이 아이들이 돈을 과하게 가졌을때 자신들이 보관주겠다면서 '약속'하는것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동양의 감복이 단순 감정적인 감복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합의로써의 계약이란 측면도 있고.... 이게 따져보면 볼수록 그냥 모르겠다는 말 밖엔 안나오더군요.
  • 말초 2018/05/29 21:24 #

    저도 말씀하신 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유럽 봉건 시대에 왕과 영주가 계약 관계라고 알려졌으나 왕이 적군에게 포위되자 아무런 보상 없이 목숨 걸고 적진에 뛰어들어 죽은 영주 기사들도 많고。유교의 역성혁명, 법가의 신상필벌도 (수직적이지만) 사회 계약론의 성격이 있죠。중국의 황제가 귀족들을 상대로 딜을 하는 경우도 있고, 한반도도 삼국시대에 백제나 고구려의 왕이 귀족들의 전쟁 참여 등을 위해 딜을 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동서양 모두 신분제, 계급제 국가였고 각기 유교와 기독교라는 종교(철학)을 정치에 도입해 사회 질서를 구축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유교와 기독교의 차이, 동양의 정치 체제와 서양의 정치 체제의 차이.. 서로 갈라지는 지점이 부지기수지만 - 본질적으로는 은혜를 입으면 갚으려는 인간의 선한 의지가 동서 모두가 가지고 있었고 갑과 을의 위치가 역동하면서 뭔가를 줘야만 뭔가를 해주는 그런 야비한 의지도 동서 모두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 두가지 의지가 양측 모두 있어서, 동양이라고 백프로 수직적 형태라 할 수 없고 서양이라고 백프로 수평적 형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 동서양 비교는 굉장히 재밌는 일이지만, 저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의외로 동서양의 차이가 크게 없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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