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vs 공자 N.O.T.E






사마천의 사기에, 공중니가 노자(늙은이)를 찾아가 예(禮)를 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 벌써 이 첫문장에서 늙은이가 중니보다 나이도 많고 지성의 레벨도 더 높았음을 알리고 있지。 여기서 중니는 노자에게 철저하게 개망신을 당한다


이미지 출처는 유투브에서 플라톤 아카데미TV 채널이 운영하는 '8대고전 읽기 노자'。

이렇게 극딜을 당했지만 중니는 노자를 '변화무쌍한 용(龍)'에 견주면서 이야기가 끝나고 - 노자, 확장하면 도가 철학이 공자, 유교 철학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음을 사기는 전한다 - 이게 요즘으로 치면 대한민국 태권도 일인자하고 유도 일인자하고 붙었는데 유도가 태권도를 이기는, 정말 놀랄 노자인 광경이거든

그런데 나는, 이게 후대의 조작은 아닐까 - 누군가 도가 철학을 돋보이려고 소설을 쓴 것은 아닐까, 사마천 아저씨가 거기에 낚였거나 일부로 낚여준 것은 아닐까 하는 음모론을 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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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중기에 유학자 맹자는 양주, 묵적을 포함해 다른 철학자들을 엄청 까고 다녔다 - 그런데 맹자는 도가 철학에 대해서는 크게 공격하지 않는다。이상하지 않은가? 만약 공자와 노자가 서로 만나서 대립각을 세웠다면 그럼 맹자를 포함해 유가 철학에게 도가는 극복해야만 하는 가공할 적, 지상 과제가 된다 - 그런데 맹자는 도가를 무시한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노자가 전국시대 중기 사람이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었다 - 전국 말기 사람인 한비자가 노자를 인용하고 있으니까 그럼 맹자 시대에는 노자가 없었다는 추리였지。이 음모론은 꽤나 설득력이 있어서 죽간 도덕경이 발굴되기 전까지 노자는 전국시대 중기나 후기 사람이란 설도 꽤 찬성표가 많았다

그런데 춘추말기 초나라 재상의 무덤에서 죽간 도덕경이 출토되면서 비로소 노자가 후대의 조작이란 오명에서 벗어나는데 - 문젠 이 죽간 도덕경이 분량이 2천자가 조금 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경과도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분량도 적고, 형이상학적 내용도 없고, 유교하고도 대립하지 않는다! - 심지어 유교와 비슷하다。맹자가 도가를 무시한 것도 설명이 된다! 서로 비슷한 철학을 공유하는데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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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공중니도 춘추 말기 사람이고, 노자도 춘추 말기 사람이니까 - 두 사람이 만나서 철학 배틀을 떴는데 중니가 통한의 1패를 겪는 일이 역사적으로 있었을까。

중니와 제자들의 대화록이라 할 수 있는 논어에, 중니가 은자(隱者)들에게 망신을 당하는 일화가 나온다 - 은자들은 어차피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고 세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천하를 돌며 유세하며 관직을 찾는 중니의 인위적인 노력이 부질없다고 조롱한다。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중니가 말빨에서 밀리지만, 원래 중니가 맹자처럼 말싸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성격을 가릴 필요가 있지

결정적으로 중니는 은자들에게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밝힌다


鳥獸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새와 짐승과 더불어 살 수 없다
사람과 더불어 살지 않고 누구와 같이 살겠는가


노자의 공자 공격과 은자의 공자 공격에서 - 노자의 공격이 좀 더 품위가 있다。그러나, 논조는 같은데 인위적 노력과 유위적 발상, 그리고 중니의 권력 의지를 지적하고 있거든。그러나, 중니는 은자의 지적에도 공감하면서도 자신에겐 자신만의 숙명이 있음을 말한다。

결정적으로, 중니를 비토했던 은자들은 채(蔡)나라 출신 지식인들이다 - 이때 채나라는 강대국 초나라와 인접해 정말 어떤 노오력을 해도 도저히 대세를 뒤집지 못해 망한 아픈 역사가 있다。그럼 이 은자들은 본인들의 경험(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더라)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자신의 경험 외 세상은 인지하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노자와 공중니가 언제 만났는지가 불분명하지만 - 중니도 자신이 인위, 유위, 욕심이 있다는걸 알았으며 그럼에도 자신의 길을 정했거든。만약 실제로 만났더라도, 중니가 말싸움을 싫어해 적당히 자리를 파한 것이 와전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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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아버지가 사마담으로, 이 사람도 대단한 문장가였는데 제자백가의 장단점과 역사적 의의를 설명한 문장을 지었다 - 그런데 여기서 사마담이 최고로 친 철학은 도가(道家)였다。그리고 사마천도 자신의 도빠 성향을 감추지 않는다



출처는 여기

문제는, 사마천이 설명하는 노자와 도덕경은 한나라 초기의 조작된 도덕경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 - 일단 사마천은 도덕경이 오천자라고 적었고, 노자가 함곡관 밖으로 소 타고 나가 행불됐다고 하는데 춘추시대 말기에 함곡관은 아직 없었다。그런데 사마천 이 양반이 얼마나 철저한 양반이냐면, 현지 답사는 기본에 상나라가 아직 발굴되지 않던 시대에 상나라 연도를 추론으로 맞춘 양반이 - 갑자기 노자 이야기를 하면서 그 빛나는 고증력이 다 사라졌네

한번 소설을 써보면, 사마천이 사기 칠려고 사기를 쓰진 않았겠으나, 도가 하악하악 하느라 도가에게 유리한 자료를 무비판적으로 채록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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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음모론이 있는데 - 불교가 중국에 유입될 적에 도교가 이 비슷한 짓을 또 합니다 ㅋㅋ

이때 불교는 형이상학, 특히 사후세계에서 도교보다 더 정교한 이론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도교는 불교를 상대로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교에서 어떤 됴디으악(주작)을 치냐면 -- 부처가 노자의 환생이란 구라를 깝니다 ㅋㅋㅋ 사마천이 사기를 썼을 적에는 아직 노자는 인간이었지만 불교와 도교가 본격적으로 맞짱 뜰 적에는 노자가 태상노군으로 승격, 종교적인 인물이 됐고 도가의 가르침도 종교로 간지 이미 오래.. 즉, 신들의 전쟁이 된거죠

그럼, 오히려, 오히려(2) 초기 유학과 초기 도가에서 유학이 더 우세했던 것은 아닐까 - 도가의 가르침과 유학의 가르침이 유사하지만 유학의 가르침이 더 정교해서 도가가 인기가 없었고, 도가가 유가를 깎기 위해 조작질을 했고 그게 노자가 공자를 철학 배틀에서 이겼다는 소설이 아닐까.. 하는 소설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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