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도덕경 N.O.T.E





왕필 도덕경을 기준으로...

옛날 강신주의 아트앤스터디 도덕경 강의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 
- 길 도(道)의 발음과 도둑 도(盜)의 발음이 똑같이 '따오' 라고。그래서 도덕경을 중국인이 읽으면 뭔가 기묘하다고 

물론 노자 정도 되는 현인이, 말장난이나 치려고 도덕경을 썼을까 - 결정적으로, 도덕경에서는 길 도(道)와 도둑 도(盜)를 구분해서 적습니다。길 도(道)를 도둑 도(盜)로 바꾸면 말이 안되는 문장도 있어요。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거 무섭다。묵적은 개를 훔치면 도둑이 되지만 나라를 훔치면 의(義)가 되는 현실을 비토했고, 유교에서 지독하게 씹는 하나라의 걸왕, 상나라의 주왕이 폭군이 아니었다는 음모론도 있지 - 도덕경에서도 지자(知者)의 위선을 신랄하게 공격한다

중국과 한국이 대의명분에 과도하게 집착해서 현실 감각을 잃었다는 오해가 있으나 대의명분 하악하악은 서구권과 일본에도 있고, 사자성어에 역취순수(逆取順守)라는 말이 있는데 "도리에 어긋난 행위로 천하를 빼앗아 바른 도리를 지킨다" -- 고로, 결과가 좋으면 그 과정에서 비열한 짓 좀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쿨한 정신은 일찍이 중국에도 있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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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취순수가 어디서 나왔냐면 - 중국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이 24대 걸(傑) - 걸은 충언을 씹고 폭정을 일삼아 백성들을 도탄지고(塗炭之苦)에 빠뜨렸다。고로, 하나라의 중신이었던 탕무(湯武)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걸을 주살한다 - 걸은 천명을 잃었고 탕무의 덕(德)은 금수에도 미쳤으니 이 혁명은 정당하다고 야부리를 까면서 역취순수가 나옵니다。 

나중에 삼국지에서 유비의 부하들이 유비에게 똑같이 역취순수를 말한다 - 유비가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익주를 공격해야만 하는데 이때 익주는 유비의 친척이자 유비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유장이 다스리고 있었지。유비는 유장을 공격하는게 인의에 어긋난다고 반대했으나 부하들이 역취순수를 연호하며 유비를 설득해 결국 유비는 유장을 쫓아내고 황제가 된다。

초창기 역취순수에서 말하는 역(逆)은 반란을 뜻한다면 나중에는 쫓아내도 쫓아낸 놈이 쫓겨난 놈보다 더 잘하면 되지 않느냐는, 굉장히 쿨하게 의미가 확대된다

그런데, 여기에도 좀 꾸시꾸시한 음모론이 있소만 - 유비가 익주 점령을 축하하는 연회에서 기뻐했다더라, 점령지의 지역 유지들과 백성들의 여론을 더 걱정했다더라。일부로 유장을 도발했다더라 - 같은 기록들

일단 선빵을 먼저 날린 건 유비가 맞소。유장 병사들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 자기편에서 싸우게 만든 것도 정사(正史)에 깨알같이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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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서는 이미 몇번이나 도덕경과 우민정치 , 대국론 , 제국주의 의혹을 찔러봤는데 - 과연 도덕경을 쓴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고 싶었을까。

일단 도덕경은 사회 정의를 세울 생각은 없다 - 도덕경이 살인을 찬양하는 중2병 책은 결단코 아니오만。도덕경은 무엇이 사람의 양생(養生)에 좋은지(好, good)를 이야기하고 그마저도 틀릴 수 있음을 1장, 도가도 비상도로 미리 말한다。노자가 살던 시대는 중국의 내전기였고 왕필이 도덕경 주석을 달던 때는 중국이 삼분되어 싸우는 수라도였다。그 사이 한나라 시대는 일단 통일된 질서로 전쟁은 없었지만, 내부에서는 지금의 북한을 방불케하는 치열한 정치 싸움이 있었지 - 한무제 시대 재상만 넷이 자살했다。

정의로운 사람이 도적의 칼에 맞아 죽고, 간사한 사람도 정의로운 사람 칼에 맞아 죽고。이런 상황에서 중국 지배층은 살아남는 방법과 중화 질서의 존속을 도모하는, 소의(小義)와 대의(大義)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버텼는데 그 와중에 지배층의 스테디셀러로 도덕경이 남았다 - 왕필 도덕경은 철저하게 양생(養生)에 주목하지, 사회 정의나 질서 수립에 대해서는 그런 거 없다고 은연중에 깔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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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전공자가 지금 이 글을 보면 화낼지두 모르겠는데 - 말하지만 도덕경이 악(惡)을 찬양하는 중2병 책은 절대 아니고(2)。중국의 역사가, 진짜 빡쎄더라。정말 어느날 갑자기 어느 황제의 어느 변덕으로 뭘로 엮여 죽을지 모르는, 죽음과 이웃하는 환경에서 재앙은 선악(善惡)을 구분하지 않더라 - 이런 환경에서 지배층은 어떤 심리를 가지게 될까 

도덕경의 냉정한 현실 인식은, 천지불인(天地不仁)이란 네글자에 무섭게 표현되고 있는데.. 동시에 노자는 하늘의 그물은 넓어서 엉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놓치는 것이 없다는 무서운 경고 또한 하고 있지만 - 여기서 말하는 천망(天網)은 사필귀정보다 인과론에 더 가까운 개념이 아닌가。

공자가 말하는 좋음이 선(善)이라면 노자가 말하는 좋음은 호(好)다 - 공자는 칸트에 가깝고, 노자는 니체에 가깝달까.. 도덕경을 읽으면 뭔가 묘하게 소름끼치는 지점이 있는데 이거 때문은 아닌가

덧글

  • vAv 2018/06/14 20:31 # 삭제 답글

    길 도와 도둑 도 문제는 진지하게 따지면 옛날 발음이 진짜 그랬나 부터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옛 발음을 재현한것들을 보면 지금 시점으로 보면 참 뭥미스러운 독특한 발음들이 많더군요....

    프레드 앨퍼드의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란 책이 있는데, 제목처럼 한국에만 한정된 내용은 전혀 아닌데 선악, 호오, 미추, 그리고 관계 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데 현대인인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선악관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고전적인 동양권에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서구식 전통의) 선악의 개념은 없었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하기도 하죠, 나름 근거도 충실하게.

    그리고 개념을 수입해 받아들였다고 해도 과거의 잔재는 남아서 현대에 동양권(특히 예시로 든 우리나라)의 경우 악의 개념을 보면 고전적인 미추(아름답고 추함)-호오(좋고 싫음)-선악(선과 악)의 개념적 혼재? 혹은 연쇄? 혹은 등치? 같은 부분도 있고, 악이라는 걸 개별적이거나 객관적인게 아니라 관계성 내에서 파악하기에 서양권과는 아예 판단자체가 많이 다르다는걸 예시와 통계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공자가 말하는 좋음이 과연 현대적 의미의 선(善)인가도 회의적이며, 또한 동시에 노자가 말하는 건 결코 현대적 의미의 선(善)과는 같은것이 될수 없을겁니다. 애시당초 그 시절에 그런걸 고려도 안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 말초 2018/06/14 21:14 #

    만나서 반갑습니다 - 강신주는 마치 옛날 발음과 지금 발음이 같은 것처럼 이야기를 하던데.. 생각해보니 발음이 완전 다를 가능성도 있군요

    옛날 사람들의 도덕관과 현대인의 도덕관은 완전히 다르다는 연구는 니체부터 제법 전통과 근거가 튼실한 이론으로 알고 있습니다。니체는 결론만 말했지만 후대 학자들이 문헌학으로 검증하니 기축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도덕 관념이 탄생하고 그 전에는 나에게 좋은 것과 싫은 것이 전부였고 사람들의 욕망이 충돌해 그걸 계약으로 통제했더라는.. - 노자가 춘추 말기 사람이라면 아슬아슬하게 걸리는데 도덕경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노자 후대 사람으로 추정되는 공자가 중국 역사 최초로 도덕을 제창한 사람이라는 주장도 있으니까요 =3=

    서양에서 말하는 선악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이분법적 선악관이고 동양의 선악은 미추(美醜) 개념에 더 가깝다고 제가 알고 있습니다 - 성악설은 잘못된 번역이고 성오설이 맞다는데 동양에서 도덕은 멋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 도덕을 잘 지키는 사람이 멋있는 사람, 명예로운 사람이고(군자) 도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찌질하고 멋도 없고 불명예스런 사람(소인)이라..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양 사회에서 이건 강력한 굴레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그럼에도 논어의 선악은 기독교적 의미의 선악이고 도덕경의 선악은 계약적인 선악이라 생각하는데.. 논어에서 죄(罪)는 하늘이 징벌하지만 도덕경에서 죄(罪)는 결과가 징벌합니다。생각보다 두 경전에서 말하는 선악이, 현대인이 말하는 선악 관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만약에 다르면, 그럼 우리는 고대 경전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고 더 이성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없지 않을까요
  • vAv 2018/06/15 08:59 # 삭제

    너무 오래전에 읽었던거라 저 책에서 읽었던 건지 다른 책에서 봤던건지 모르겠는데 수치심의 문화(동양)와 죄책감의 문화(서양)의 차이를 말하는게 있었습니다. 이건 또 선악관과 관련되는 내용인데.... 아무튼 거기서 두가지 문화가 낳은 차이를 장황하게 설명한 다음에, 무협지 식으로 말하자면 만류귀종이랄까 그 최종극의에 이르러 거기서 거기(...)에 이른다는 것 역시 보여줍니다.

    뭐랄까 무술에서 서로 상정하는 간합(간격)이 같으면 기술이나 논리가 비슷해질수 밖에 없는 것 처럼, 비슷한 문제에 대한 인식-거기에 대한 해답이기 때문에 그게 문제를 해결하는 최종단계까지 이르면 과정의 상이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렇게 보인다더군요.

    경전은 이론적으로 궁극적 형태를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현대의 선과 비슷해 보이며 충분히 공감할수 있다는건 사실일겁니다. 그렇지만 그 결과만을 보고 과정을 대강 무시하면 영 딴길로 샐 뿐이죠. 궁극적인 상 현대의 선(善)과 닿아있다고 과정에서까지 그렇게 이해하는게 오히려 선(善)에 이르지 못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합니다.
  • 오오 2018/06/15 15:58 # 삭제

    그니까 결과가 비슷해보여도 과정은 다르니까 결과만 보고 과정에서도 비슷한걸로 생각하면 안된다는....와 말이 꼬인다.

    무술 예시가 있으니까 최대한 무술로 이해해보자면 최종적으로 비슷한거에 다다른답시고 중간에 타류의 원리나 시스템 섞었다간, 혹은 타류의 원리나 개념으로 이해했다간 이도저도 안된다거 아님? 실제로 저것들땜에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들 중간에서 이상하게 꼬이긴 하는데.

    무술로 이해하니 대강 감은 잡히는구만.
  • 무간 2018/10/19 11:36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도덕경"을 키워드로 들어왔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덕경을 중심으로 인문고전을 번역해서
    출판하는 1인 독립출판 "무간"입니다.
    여유 되실 때, 한 번 둘러봐 주세요.
    http://cafe.daum.net/SpringandStarinJi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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