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주나라 N.O.T.E




졸라 오랫만에 글 쓰네 =3=

논어를 포함해 공자의 일대기를 기록한 문헌들을 읽으면 공자는 주나라를 향한 자신의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공중니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 주나라 주공 단(旦)이었고 - 주나라의 제도를 이상적인 통치 모델로 여겼다。이런 공자의 믿음은 후대에도 전승되어 유학자들은 주나라 제도를 현실 정치에 적용하고자 부던히 애썼고 몇몇 황제나 지식인들에게 과거에 집착해 현실 감각이 없다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럼 여기서 공중니는 어째서 주나라를 그토록 찬양했는지 - 그리고 이 찬양은 정말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지를 따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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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말하면 - 주나라의 건국은 굉장히 감동적이었다。지금부터 내가 말하는건 전통적인 유교 사관(史觀)에 근거한 주나라의 역사다。

기원전 1,600년경에 세워진 상(商)이라는 나라가 있었다。상나라는 일단 중국에서 존재했던 고대 국가는 맞소만 민족이나 문화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전통적인 중국인들은 농경 민족이라 머물려는 습성이 강한 반면 상족(商族)은 수도를 자주 옮겼고 전통적인 중국인들이 종교에 대해 무심했다면 상족은 종교에 열성적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 당시 상족은 제(帝)라는 유일신을 믿었고 이 유일신에게 사람을 공양하는 문화가 있었다。기록을 보면 포락형, 주지(酒池), 육림(肉林) 같은 기괴한 제도들이 등장하는데 이게 (후술하겠지만) 종교 제례였다는 설도 있고。여기에 상족은 청동기를 잘 다루는 강력한 패권 국가였다 - 이들은 평소 청동기로 무장한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주변 부족들을 공격해 포로를 잡아 공양하길 즐겼다

여기에 반발한 일대 부족들이 주족(周族)를 중심으로 연합해 기원전 1046년, 목야 대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상나라는 망하고 '인문 혁명'이 이뤄지게 됐다는 것이 유교의 전통적인 사관(史觀)이다。참고로 목야 대전쟁도 전황은 연합군에게 불리했는데 상나라의 선봉대에 있던 노예 군단이 (주나라의 덕을 흠모해) 주나라에게 투항하면서 전세가 역전됐다니 - 주나라는 문명을 상징하고 상나라는 야만을 상징하고.. 고로 주나라가 상나라를 이긴 것은 정의의 승리이자, 민심의 승리이자, 인문 정신의 승리이자, 하늘의 도우심이자 뭐 기타 등등。

이렇게 주나라의 승리와 상나라의 멸망은 사람의 마음을 직관적으로 흔드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고 유학자들이 거기에 홀라당 넘어갔던 모양입니다만。

그런데 문헌학자나 고고학자들이 보니까 이게 뭔가 앞뒤가 맞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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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주나라는 상나라의 야만적인 제도를 폐지할 의지가 약했다 -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상나라는 법도가 문란해서 남녀가 발가벗고 숲속에서 집단 난교를 즐긴다고 디스했는데 이 문화는 주나라에도 그대로 계승된다。(물론 매일 이 짓을 했던게 아니라 국가 공휴일에만 허락된 행사였다) 

술로 연못을 만들었다는 주지(酒池) 역시 주나라 이후에도 계승되서 한무제가 술로 우물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고.. 인신 공양도 개혁하질 못해서 순장과 함께 이 제도는 춘/전 시대에도 계속 남았다。참고로 중국에서 순장 제도는 무려 청나라 중기까지 유지됐는데 공자는 순장은 천벌 받을 짓, 자손이 끊어질 짓이라고 욕을 했으니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지

주나라가 상나라 전통의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시점은 융(戎) 등 서방의 이민족 세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하면서 주나라의 권위가 실추되고 - 마치 왜란과 호란을 겪은 조선이 지배층의 권위를 지키고자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믿었듯。주나라 역시도 권위를 지키고자 두차례의 예법 개혁을 시행한다。이 시절에 개혁된 예법들이 공중니가 좋아했던 - 주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주나라 스타일의, 주나라의 독창성을 지닌, 주나라 예법이다 =3= 

고로, 공중니가 찬양하던 주나라의 제도는 대부분 주나라 말기에, 주나라가 무너지는 권위를 지키고자 만들어낸 애잔하고도 인위적인 시도들이었고 어떤 것들은 공자 탄생 오십년 전에(...) 발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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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보면 인문 혁명은 허상에 지나지 않고 -- 결국 상주(商周) 교체는 권력 투쟁에 지나지 않았냐는 마키아벨리 돋는 결론이 나올수도 있지만。

일단 상나라는 신정(神政) 국가였고 주나라가 상나라를 대체하면서 - 주나라를 상나라와 비교했을 적에, 보다 인문적인 정치가 시작됐음은 분명하다。나아가 상나라 시절에는 오직 군사력으로 천하의 질서를 유지했다면 주나라는 문치(文治)와 덕(德)으로 질서 유지를 꾀하는데 이것도 장족의 발전이지。

원래 중국 역사가 다 이런 식으로 발전합니다 =3= 진시황제의 법치가 지독하다고  각지에서 들고 일어났는데 결국 진나라를 대신했던 한나라가 했던 짓이 진나라 법은 계승하면서 그걸 유교로 포장하고 - 고로 한나라는 유교 국가라고 우기는 짓을 하거든。이게 다 위선이고 가식 같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한나라 시대에 유교가 중국과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유일 철학으로 성장하게 된다。

고로 단순히 상나라 전통이 주나라에 있었다고 주나라는 가식이고 공자의 철학도 의미가 없다.. 라고 말하기는 조금 많이 부족하다。근본적으로 공자 철학을 '주나라 최고'로 요약하기에는 공자의 철학적 사유도 만만하지가 않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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