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잔영(殘影) N.O.T.E


헤루죠센의 기운이 느껴져요

유교에 대한 전통적인 비판 중에 하나가, "유교는 가족 이기주의를 조장한다"고 합디다。과연 그럴...까?


이걸 보면, 가족 이기주의를 조장하는 거 같기두 하다。또 다른 전통적인 비판은 상명하복 질서를 긍정하고 그걸 가족 제도에 도입했더란 공격도 있다。가령, 유교에서 이상적인 군주로 여기는 순이 아직 평민이었던 시절에 - 계모와 이복동생이 순을 죽이고 재산을 탈취하려고 하는데도 순은 끝까지 계모를 효(孝)로서 모셨고, 유교는 "This is 효" 라고 추켜세운다。확실히 이쯤되면 뭔가 맛이 간 거 같기도 하다 =3=

그런데, 이건 과연 공자의 말씀일까 - 공자는 진짜로 아버지가 아들을 죽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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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공자가 살던 시대 (춘추시대 말기)는 역설적으로 친족간의 정이 더럽게 없던 시대라 - 공자가 그래서 효(孝)를 강조했던 것이다。마치 보증으로 망한 집의 가훈이 "보증서지 말자"가 되는 원리랄까 =3= 사기, 열국지처럼 이 시대를 다룬 문헌들을 읽어보면 -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건 물론이고 아버지도 아들을 죽인다。

쇼킹한 에피소드를 하나 풀어보면 - 제나라의 왕(환공)이 "좀 특별한 음식이 먹고 싶다"고 주문하자 요리사 역이기가 자기 아들을 죽여 그 인육으로 스프를 요리해 바쳤다 (실화입니다)。환공의 반응이 진짜 엽기적이다。"역이기가 나를 위해 아들을 희생했으니 진정한 충신"이라고 칭찬하고, 일개 요리사였던 역이기는 훗날 큰 권력을 잡게 된다。

이런 수라도에서 공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자식에게 애틋한 마음을 천성적으로 가지기 마련이건만, 시절이 시절이라 그 본성을 잃었고。고로, 그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고 믿었다。공자가 말하는 효(孝)란 생각보다 투박하다。"부모는 다만 자식이 아플까 걱정"이라고 했는데 -- 자식이 아플까 걱정하는 부모가 무슨 수로 자식을 죽일 수 있겠는고? 


만약에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면, 여기서 가벼운 영상 자료 하나만 보고 가자!




이때 공자의 상관이자 노나라의 실권자였던 계손씨는 불효자를 죽이지 않은 공자를 "위선자"라고 욕했다。평소에 그토록 효를 떠벌거리더니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극대노했지 - 즉, 유교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도 전부터 이미 효(孝)는 상명하복을 정당화하는 지배층의 명분으로 악용되고 있었으며。고로, 공자는 효(孝)를 권력의 영역에서 인간이 가진 선한 마음의 영역으로 되돌리고자 노력한 위인이란 반전이 나온다。

앞에서 말한 양도둑 이야기도 - 요즘의 관점에서는 가족 이기주의로 해석될 수 있고, 이런 해석도 나도 반대할 생각이 없소만。다르게 보면? 국가를 위해서 (정확히는 왕을 위해서) 개인의 감정을 희생해야 한다는 국가의 논리가 될 수도 있거든。인간 개개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타인보다 (정확히는 임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면? 국가 체제는 (중립적인 의미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 - 왕의 입장에서는 피지배층 개개인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게 헌신하는 그 모양이 대단히 무섭겠지。

제정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농노가 여자와 사랑에 빠지자 주인이 그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낸다。농노가 개를 사랑하자 이번에는 개를 죽이라고 명령한다。결국 농노는 개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개를 죽이고, 목숨을 건 탈주를 시도한다 - 사랑의 힘。사랑에 빠진 사람이 최후에는 왕보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 행동할 것을, 알고 있는거지, 아무튼。

양도둑 이야기는 관점에 따라서는 - 개인의 감성을 말살하고 오직 국가 (정확히는 임금)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대단히 폭력적인 발상일수도 있다는 말씀 =3= 법가는 아마 아버지를 고발한 아들이 정직한 사람이라 믿겠으나, 그런 법가의 말씀을 채택한 진나라가 불과 2대만에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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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공자는 죄가 없는걸까? - 사실, 유교의 변질은 운이 나빴다。공자의 제자들은 크게 초기파와 후기파로 나뉜다。초기파는 공자와 함께 고생하며, 천하를 돌며 공자 사상을 잘 이해했던 사람들이고。후기파는 말 그대로 후기에 들어와 공자 사상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친구들이었지。그런데 하필 초기파 제자들은 자공 정도를 제외하곤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다。특히 안회라는 초기파제자는 공자의 사상을 완벽하게 계승했는데 공자보다 빨리 죽었고 - 공자의 적통은 증삼이라는 후기파 제자가 받는데 이 사람이 효(孝)나 충(忠)을 경직되게 해석하면서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하면 - 공자는 (싯다르타, 예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 속에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 행동하는 의지가 있다고 믿었다。그래서 사람이 the 선한 의지에 따라 최선을 다해 자신의 (계급이 규정한) 책무를 다하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건만。충(忠)은 원래 마음(心)의 중심(中), 상대방을 진실하게 대하는 마음의 자세에서 '윗사람을 향한 복종'으로 뜻을 바꾼 사람이 바로 증삼이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공자: (모두) 노력하자
증삼: (니가) 노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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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국시대부터 묵자, 노자의 학설을 신봉하는 무리들이 유교의 효(孝)를 강하게 공격했고 - 이 사람들의 비판도 꽤 날카롭거든。묵자의 효 비판은 이미 다뤘으니 노자의 비판을 다뤄보면 - 명가도 비상명。효(孝), 인(仁)은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건만 그걸 "A=B" 식으로 디파인하면 그건 더 이상 효가 아니란 말씀 =3=

For example,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삼년상을 치루면 효자인가? 그런데 삼년상을 하다가 아들이 기력이 쇠해서 죽는 일이 있었다 (실화)。그럼 늙으신 어머니 혼자 이 험한 세상에 홀로 남는데 이건 효(孝)라고 할 수 있을까? 참고로 한대(漢代)는 "그렇다"고 합니다。지금 유교 탈레반, 유교 탈레반 그러는데 한나라 유교가 진짜 유교 탈레반, 진짜 유슬람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주거든。이건 다음번 포스팅에서 다룰 예정인데 맛보기만 살짝 하면

삼국지의 유비가 위기에 처하니까 자기 처자들 버리고 튀잖아? 그런데 누구도 그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유비측 사람들이야 둘째치고 조조측 사람들은 "얼레리 꼴레리, 애비란 새끼가 지 아들도 버렸데요" 이럴수도 있는데 전혀 디스하지 않는다。왜? 조조도 "아줌마 정말 좋아" 짓하다가 가후에게 개털리고 - 자기 아들 버리고 튀었거든 (에라이!)。 그리고 이 시대는, 아버지를 위해 아들이 죽는 것이 너무 당연한 시대였고 죽는 아들조차도 거기에 대해 큰 의문이 없었던 거 같다。

아들이 여기서 대오각성해서 "아버지, 아무리 내가 아버지 아들이라도 이건 좀 아니지 않소?" 이랬다간 살아 남았어도 사회적으로 매장됐을테고。그런데 이 원죄를 거슬러 올라가면 초한지의 유방이 나옵니다 ..



그런데 유방은 정통 유학자하고는 백만광년 떨어진 사람입니다。이걸 과연 유교의 책임으로만 물을 수 있는지 의문이지。진지하게 들어가면 - 유방은 진제국 초나라 출신으로, 원래 직업은 학자도 귀족도 아닌 건달이었다。그럼 아들 살해가 과연 유교의 전유물인지, 유교에서 파생된 문화인지에 대해 조금 생각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유교의 책임이 정말 하나도 없느냐면.. 그건 또 아니란 말씀 =3= 하여간 되게 복잡한 문제다。그런데 지금 벌써 밤 열한시가 넘었네? 나머지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여튼 다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기를。

덧글

  • VAVAVAV 2019/01/05 17:52 # 삭제 답글

    공자의 책임이 아닐 '수'도 있지만 유학의 책임이 아니냐고 하면 그건 확실히 거짓.

    '요즘의 관점에서는 가족 이기주의로 해석될 수 있고, 이런 해석도 나도 반대할 생각이 없소만。다르게 보면? 국가를 위해서 (정확히는 왕을 위해서) 개인의 감정을 희생해야 한다는 국가의 논리가 될 수도 있거든'

    그리고 처음부터 당신이 스스로 말하듯이 공자의 그것도 가족이기주의적인 요소를 다분이 함의하고 있음. 반대편이 지독한 무언가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문제없는 무엇이 되는것이 아니듯이, 서로 다른 방향의 '대단히 폭력적인 발상'이 되는것일 뿐. 원래 딜레마가 그렇듯이 어느거나 답이없는 싸움이 되는거.
  • 말초 2019/01/05 23:59 #

    유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덕 - 하다못해 공자 사상의 핵심은 바로 인(仁)하고 서(恕). 두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둘 다 요즘말로 바꾸면 "공감 능력"임.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걸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말씀 =3= 양도둑 이야기가 가족 이기주의로 해석될 수 있다고 쳐도 - 유교 사상이 전반적으로 지배층의 도덕적 대오각성을 촉구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본받는다 라는데. 가족끼리 이기적으로 다 해먹어도 되며 그 과정에서 사회라는 공동체는 파괴되도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할 사람들이었음 맹자가 미쳤다고 역성혁명 같은 말을 했겠소? =3= 왜 그 시대 왕들이 공자와 맹자를 그렇게 미워했을까?

    초기 이슬람의 다처(多妻) 문화가 여성을 전리품처럼 수집하는게 아니라 전쟁으로 남자가 많이 죽은 상황에서 - 이른바 과부 복지의 측면이 분명히 있었건만. 후대에 상황이 변했음에도 다처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개선되지 않아 그게 안좋은 쪽으로 간 것처럼. 공자가 양도둑 이야기를 할 때는 부자관계가 너무 돈독해서 문제가 되는 시대가 아니라 너무 나빠서 문제가 되던 시대였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전한 말기에 왕망이라는 대유학자가 있었는데 자기 아들이 노예를 멋대로 죽이자 아들을 자살시켜서 천하에 사죄를 구했다고 함 - 이 일로 사람들은 왕망이 진정한 군자라고, 힙스터로 떠올랐건만 (이 외에도 너무 검소해서 아내의 옷차림이 마치 하녀의 옷차림과 같아 손님들이 뭣모르고 무례를 저질렀다는 기록도 있음). 나중에 왕망은 이렇게 모은 인심으로 정치 세력을 만들어 어린 황제를 독살하고 찬탈을 합니다. 이런 부류의 일들은 중국 역사에서 제법 자주 보이는데, 정말 사이코패스 같은 권력자들은 가족까지 희생물로 삼아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쌓아요. 계모의 핍박을 받아도 끝까지 효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는 순도 다른 역사서에서는 임금이 되고서는 계모와 동생에게 보복했다는 무서운 기록도 있고 =3=

    춘추전국시대도 예외는 아니라서 - 장군 아버지가 적국을 쳤는데 그 적국에 아들이 있었네? 그러자 적국이 아들을 죽여서 탕으로 끓여서 장군에게 선물함. 장군의 심기를 어지럽혀 전략적 이점을 얻어보겠다는 계산이었건만. 아버지는 아들 고깃국을 마시고 바로 공격해서 멸망시킴. 이때 아버지는 "내가 나라를 위해서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아들이 죽어도 내 책무를 다했다" 뭐 이런 태도였던 거 같은데 - 정작 조정에서는 지 아들도 잡아먹는데 임금도 못 먹겠냐며 이후 써주질 않음. 공자도 이 장군의 본심이 나라를 위한 충성이 아니라 출세욕 쪽에 더 중점을 두었던 거 같고. 공자가 살던 시대는 이런 시대였습니다.

    양도둑 이야기도.. 우린 지금 아버지를 고발한 아들이 선한 의지로 그걸 했으리라 전제 하에 이야기를 하는데 - 그건 누구도 모를 일이지. 일던 저 말을 하는 사람은 지배층이니 당연히 법을 잘 지키는 백성이 귀엽겠으나. 아들이 막말로 아버지 재산을 일찍 상속받으려고. 혹은 출세나 명성을 목적으로 아버지를 고변하지 않았으리라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그런 시대였습니다(2)

    양도둑 이야기에서 공자의 태도는 "가족끼리 해먹어라"가 아니라 "가족이나 잘 챙겨라"에 가깝지 않나..
  • 말초 2019/01/06 16:50 # 답글

    To. 익명

    아씨 덧글 또 다 또 지웠네? ㅋㅋ 그때 그 사람이었나? ㅋㅋㅋ

    아니 왜 다 지우세요?

    욕을 시원하게 하시더니 =3= 마음이 되게 여리신 분인가? 그렇게 마음이 여리신 분께서 왜 남의 블로그에서는 익명의 힘을 빌어 호쾌하게 욕설을 하십니까 ㅋㅋ 본인 천성에 맞지 않는 짓을 하면 정신건강에 안좋아요
  • 2019/01/10 14: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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