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못말려 N.O.T.E

만약에 저때 조조가 진짜로 죽었으면, 조조는 역대 최고의 영웅이 아니라 역대 최고의 바보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동진 시절에, 황제 효무제는 후궁에게 "너도 참 늙었구나, 내일부턴 어린 여자들 끼고 자겠다" 라고 선언했다가 - 격분한 후궁이 잠든 효무제를 베개로 눈코입을 막아 시해한 사건이 있었다。그게 금상이라면 조조의 죽음은 은상, 아무리 못해도 아차상은 받지 않을까? =3= 

그럼 조조는 왜 유부녀를 건드렸을까 - 물론 조조에게 유부녀 판타지가 있었으니까 건드렸겠지。그러나, 이 시대에 유부녀에게 더럽게 껄떡(?)거리는 습성은 조조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게서도 관찰된다。

가령, 익주의 군웅이었던 유장의 아버지 유언은 한중 장로의 어머니와 얼레리 꼴레리~ 하는 사이였고 (이거 때문에 장로하고 유장하고 사이가 나빴다)。여포도 제장들의 아내에게 찝쩍거렸다가 제장들의 통수로 리타이어(...) 그런데, 여포의 안티테제라 할 수 있는 관우조차 여포의 제장이었던 '진의록'의 아내 두씨를 자신에게 달라고 조조에게 졸랐다는 흑역사가 있다。쩌는 것은, 조조가 "관우 정도 되는 양반을 홀린 여자가 누구길래?" 하면서 슥 봤더니 두씨가 졸라 미녀라서, 그대로 두씨를 취했다는 말씀 =3=

-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기록은 구라라고 믿는다。나중에 관우가 조조 밑에서 일하잖아? 이게 말이 되나? 관우도 자존심이 졸라 쎄기로 유명하건만 설마 자기 여자를 뺏어간 남자 밑에서 일했으리라곤 상상하기 어렵다 =3=


//

그런데 문제는 - 여포가 죽으면서 진의록이 조조에게 투항한 상태였거든? 조조는 여포에게 "너는 평소에 제장들 아내에게 더럽게 껄떡거림서 뭘 잘했다고 까부냐?" 이런 면박까지 줬다。그러니까, 조조는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의 아내를 취한 것처럼, 진의록의 아내를 빼앗았다는 이야깁니다만。차이가 있다면, 우리야가 A급 영웅이라면 진의록은 인재가 많은 조조에게 있어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었달까。

생각해보면, 조조가 하후돈이나 순욱의 아내를 빼앗지는 않았다 -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의 아내는 그대로 두고,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아내만 쏙쏙 취하는 이 간교함은 뭐란 말인가(..) 과연 난세간웅(難世奸雄)이로고..

그런데 조조의 판단이 결과적으로 맞았다 - 진의록은 유비가 훗날 조조에게서 탈출할 적에, 장비가 "조조가 당신 아내를 뺏었는데 쪽팔리지도 않냐, 우리랑 가자" 라는 설득에 넘어가 유비에게 합류했다가。뭔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다시 유비 통수를 치려다가 장비에게 죽는다(...)。인간적으로는 연민이 가는 삶이지만, 솔직히 간지가 있지는 않고。조조가 얼마나 사람을 냉정하게 잘 포착하는지를 거꾸로 한바퀴 돌아서 보여준 일화랄까。뺏어도 별 탈이 없겠다고 판단이 섰고, 그래서 뺏었고, 실제로도 아무 일도 없었다。이쯤되면 많이 무섭다 ㅠㅠ

만약에 조조가 저기서 실수해서, 알고보니 진의록이 한신 같은 놈이었다 - 그래서 군(軍)을 이끌고 허창으로 진격해 조조의 목을 쳤으면...? 진짜 역대급 드라마가 나왔겠지。항우와 우미인, 오삼계와 진원원의 러브 스토리하곤 비교조차 되지 않겠으나。안타깝게도 진의록의 레벨로는 조조를 도저히 도모할 수가 없었다 ㅠㅠ


///

이런 조조나 관우의 모습은 굉장히 엽기적으로 보인다。인간 세상의 모든 사건사고가 다 섹스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던 희랍(그리스) 사람과는 달리 중국은 무려 유교가 헤게모니를 장악했지 아니한가。

그런데 고대 중국인들은 사고가 너무 유연했다。이 사람들은, 치세와 난세는 다른 이치로서 통치해야 한다고 믿었거든。이 시대 사람들이 남긴 기록물들을 보면 - 이른바 "치세에는 덕(德)으로 다스리고, 난세에는 법(法)으로 다스린다"는 말씀 =3= 여기서 법이란 헌법 같은 것이 아니라 위엄, 카리스마, 무력(武力), 공포, 속임수 등을 말한다。

만약에 조조가 치세에 활동했으면, 조조도 어쩌면 남의 아내를 건드리지 않고 축첩을 하더라도 법이 허락하는 선에서 했겠지。

이 원죄는 거슬러 올라가면 공자까지 나오는데 - 공자의 선배되는 정치인 중에 제나라의 재상 '관이오' 라고 있었다。이 블로그에서도 몇번 이야기를 했는데 관이오는 쉽게 말하면 춘추시대 제나라의 제갈량 같은 사람이었다。군주를 잘 보필했고, 제나라를 미국 같은 나라로 만들어서 주나라 분열 이후 땅에 떨어진 중국 문명을 존속시키는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관이오는 속임수도 많았고, 신하의 예법에 어긋나는 사치도 즐겼단 말씀 =3=

공자의 제자들은 이런 관이오를 크게 치지 않았다。아무리 공이 많아도 신하의 예법을 지키지 않고, 속임수로 나라를 통치하는 인물을 위인으로 여길 수 없다는 유교만의 자존심이랄까... 그런데 정작 공자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관이오를 비판하지만 동시에 관이오의 공적도 인정한 것이다。그런데 이게 대단히 중국인적인 태도거든。


////

공자 제자들의 자세는 맹자가 계승했고, 한반도에는 맹자가 흥하면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그래도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는 유교가 발달한 반면 (그래서 청나라에게 그렇게 개겼습니다, 아멘 ㅠㅠ)。중국에선 고우영 화백이 지적하는 중국인만의 이중성이 나온다。인의예지를 대단히 강조하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정말 천하의 역적이 되는 것은 맞지만。진짜 머리 좋은 사람들은 그걸 알음알음 빗겨간다고 해야 할까...

대표적으로, 한나라 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효자가 곧 충신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그래서 관리 선발의 기준이 이 친구가 얼마나 효성스러운지가 진짜로 있었는데 - 이 시대에 반역죄에 연루된 사람들 중 적잖은 인간들이 소싯적에 효자로 이름 좀 날렸다는 것은 어떤 의미란 말인가? 원소, 사마사, 사마염, 가충... 

조조도 원래는 엄격한 법 집행으로 - 다른 사람도 아닌 십상시 중 하나였던 건석의 삼촌이 통행금지령을 어겼단 이유로 몽둥이 찜질을 가했던。포청천 같은 인물이었다。만약 난세가 오지 않았으면 조조는 명판관, 청백리, 백성들의 꿈과 희망으로 삶을 보냈을지도 모른다。이랬던 인물이 법과 질서가 무너지자 속임수를 주특기로 삼은거야 현실적인 문제가 있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그 과정에서 자신의 욕망까지 쿨하게 드러냄은 대체... =3=

앞서 여포 이야기를 했는데 - 여포는 그런 의미에서 "아둔"한 것은 맞다。조조처럼 적당하게 형식을 지키면서, 적당히 해먹었으면 어그로를 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그런 의미에서 조조는 "간교"한 것이 맞다。즐길 거 다 즐기면서도 여론을 무마할 수 있는 그 선을 정확하게 지켰다。

조조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간웅(姦雄)이라는 그 단어가 무섭게 다가온다。이문열 같은 사람은 조조가 영웅이라고 추켜세우기 바쁘지만。현실에서는 이문열 같은 사람도 조조 밑에서 일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만약 조조는 이문열이 대체 가능한 인력이라는 판단이 서면 - 무슨 짓을 할 지 정말 아무도 모르고, 그걸 막을 수도 없고。하늘이 대신해 복수한다는 장담은 더더욱 할 수가 없다。특히 조조는 공융, 양수처럼 글재주가 빼어난 문인들에게 정말 잔인했단 말씀 =3= 

과연 영웅이란 뭘까 - 우린 영웅에게 무엇을 바랄까 - 그 과정에서 영웅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원한다면, 그때도 그 사람은 내 영웅일까。이런 식으로 치면 황해의 면가 같은 사람도 시대를 잘만 타면(?)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닌가...

덧글

  • 이야 2020/10/27 08:17 # 삭제 답글

    조조의 오입질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정말 좋은 분석이었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