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영웅인가 N.O.T.E




조조는 못말려

그러니까, 삼국지 인물들 중에서 조조만큼 사랑받는 존재도 없는 것 같다。내가 어렸을 때는 유비나 제갈공명이 아이돌이었고 조조는 천하의 악인(惡人)이었는데。어느날 조조 재평가 바람이 불더니, 이제는 조조만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강좌나 책까지 나온다。

아마 한국에서 조조를 재평가한 최초의 사람은 (확실하진 않지만) 고우영 화백이 아닐까。고우영 화백은 고우영 삼국지에서 조조를 영웅, 담백한 사나이라고 인정하면서, 유비는 쬬다, 위선자, 울보로 비토한다。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조조가 간교한 것은 맞지만 유비는 그런 조조보다 더 속이 검은 인물이랄까。초한지의 유방 같은 느낌이지 (고화백 유니버스에선 유방과 유비의 외모가 똑같다)。딱히 고화백이 조조를 (최소 이문열만큼 적극적으로) 쉴드치는 것 같진 않다。

하여튼 조조를 분석하는 책들을 읽어보면 - 어느 지점에서 작가는 조조의 악행(惡行)을 설명하지 않음 안되는 때가 온다。마치 박정희를 사랑하는 논객들이 어느 순간, 박정희 시대의 그림자를 설명하지 않음 안되는 상황에 처하는 것처럼 =3=

이문열 같은 사람들은, 조조를 열렬하게 보호하기 바쁘다。반면에, 주로 인터넷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있는 이른바 '촉빠' 성향의 사람들은 조조를 열렬하게 비토한다。그냥 유능한 폭군에 지나지 않았고, 조조의 악행이 원죄가 되서 위나라는 불과 46년만에 망했더란 말씀 (그 중 16년은 사마씨 천하)。고로, 오호십육국이라는 난세는 조씨의 악업(惡業)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조조는 영웅이 맞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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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대 중국의 영웅은 도덕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 - 영웅은 선악(善惡)은 아무 관계가 없다。후한 말기부터 위나라 시대까지 활동했던 '왕찬'이라는 위나라 관료가 '한말영웅기'라는 책을 썼는데。삼국지 게임 2번째 시나리오, 군웅할거에 등장하는 군주들의 사적을 기록한 역사서다。그런데 이 영웅기는 조조는 물론 원소, 여포에 무려 동탁의 사적도 기록했다。고로, 이들도 일단 영웅의 범주에는 골인했다。무려 위나라의 관료가 동탁, 원소, 여포를 영웅으로 인정했단 말씀 =3=

그 시대 사람들의 믿음이 그랬는데 - 후한 시대에는 영웅의 조건이 '업적'이었다。즉, 어떤 사람이 불륜을 하든 살륙을 하든 영토를 넓히거나,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거나, 군주를 보호하거나, 중화문명을 발전시킬 위대한 치적을 쌓으면 그냥 영웅이 됐다。이게 후한 말엽, 위진시대로 넘어가면서 '업적'이 '기질'로 기준이 변화하기는 했지만? 역시 도덕하고 영웅하곤 무관하다는 코어는 유지되거든。

그럼 영웅의 기질이 뭘까 - 삼국지연의에서 조조와 유비가 "누가 중원의 영웅인가"를 두고 토론하지 않습니까? 거기서 조조가 말하는 그대로요。


영웅은 가슴에 큰 뜻을 지니고, 뱃속에 좋은 꾀를 가지며, 우주를 품을 기지와 천지를 삼킬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한다던가, 도덕적으로 산다던가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근본적으로, 영웅의 영(英)은 어원이 "풀 중에서 가장 빼어난 풀"이고 웅(雄)은 "짐승들 중에서 가장 빼어난 짐승"이란 뜻이거든。여기서 풀은 지(知)을, 짐승은 용(勇)을 상징하니 지용을 갖춘, 큰 뜻을 품은 인물이 영웅이며 그 큰 뜻이 반드시 이타적일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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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믿음이 유행한 걸까? - 일단, 고대 중국인들이 사고 방식이 유연했다。치세를 다스리는 법도와 난세를 다스리는 법도는 다르고, 치세에는 덕(德)으로, 난세는 법(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믿었는데 - 여기서 말하는 법은 헌법 그런게 아니라 위엄, 더 쉽게 말해서 공포를 뜻합니다。조조 이야기를 해보면, 이 사람 원래 낙양 북부위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는데 북부위란 요즘으로 치면 경찰서장이다。그러니까, 무려 수도 낙양의 경찰서장까지 했던 양반이 나라가 망하니까 서주에서 백성들 시체로 강물 막고 그랬더란 말씀 =3= 

만약에 조조가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럼 조조도 유능하고, 청렴하고, 덕(德)으로 다스린 유교 관료로서 살았겠지。그런데 시대가 난세였고 조조는 "치세의 법도로는 난세에 맞지 않으니 난세의 법도로 난세를 다스리겠다"는 발상으로 공포정치를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공포정치는 중립적인 의미) - 이런 자세는 조조만 아니라 그 시대 군웅들 모두가 공유하던 일종의 시대 정신이자 상식이었다。물론 진궁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반발하기는 하지만, 또 순욱 같은 사람은 문제 없다는 입장이거든。

물론,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느냐고 항거하는 열사들도 있기는 있었는데 - 이런 열사들이 동탁, 조조 밑에서 어떤 험한 꼴을 당했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 그리고, 동탁이 왜 죽었을까。순욱이 왜 조조와 틀어졌을까。동탁과 조조가 역성혁명을 시도하면서 결국 탈이 났거든。우리가 생각하는 대의(大義)와 이 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의(大義)는 마치 화성인의 상식과 목성인의 상식 정도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후한 말기에 유교가 너무 경직되고 장황해서, 거기에 대한 반발감도 이런 영웅관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쳤다。이 시대 영웅의 조건 중에 하나가 '정직함'이거든。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정직함은 워싱턴의 버드나무 같은 정직함이 아니라 - 마치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트럼프를 "힐러리와는 다르게 사람이 소탈하고 감추지 않아서 좋다" 같은 의미의 정직함을 말한다。

그런데 힘 있고 군사력 있고 권력 있는 놈이 정직함까지 갖추면... 그 다음이 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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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양도 비슷했다 - 정복왕 알렉산더 대왕은 '파괴자'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파괴와 학살을 즐겼고, 카이사르도 학살을 했고。고대 서양의 삼국지(사실 적벽가에 더 가깝지만)라 할 수 있는 '일리아드'에도 아킬레우스 같은 "영웅"이 하는 짓 보면 진짜 무도(無道)하고 난폭하기가 장난이 아니거든。그냥 여포의 전투력을 가진 조폭이 장군에 임명됐을 때, 다만 그 조폭이 조금 진지하게 명예를 추구하는 성격일 경우에 보여줄 수 있는 신념을 보여줍니다。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것도 평화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에 불멸의 명성을 남기기 위해서였고 =3= 굉장히 이기적인 동기였다。

이 시대의 도덕은 '명예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며 악(惡)은 계약을 지키지 않는 행위 - 고로 계약을 지키고, 명예도 훼손하지 않는다면 무고한 사람을 죽여도 그게 영웅의 결격 조건이 되지는 못했다。괜히 니체 같은 철학자가 옛날 사람들은 도덕이란 관념 자체가 없었다는 충격적인 결론을 내렸겠어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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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조로 돌아와서 - 조조는 일단 뜻도 있었고, 지모도 있었고, 공훈도 있으니 영웅은 맞지。다만, 그래서 그 다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나。영웅인거 알겠고, 참 잘하셨는데, 누군가가 영웅이 되는 과정에서 내가 죽어야 한다면。혹은 내가 죽는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과연 영웅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냐는 의문 정도는 한번 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가지 분명한건, 영웅이 많은 시대는 보는 사람 입장에선 참 흥미롭지만 -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 입장에선 진짜 죽을 맛일거다。이문열도 조조는 사랑하지만, 과연 조조와 주종관계를 맺고 싶을지는 또 모를 일이 아닐까나 =3=

덧글

  • ㅇㅂㅎㄷ 2019/02/13 20:21 # 삭제 답글

    조조는 나기부터 금수저물고 태어났고, 분류하자면 위정자들이나 역사를 기록한쪽에서 영웅이다 만들어 내려오는 하향식 인물이죠. 그들조차 쉴드못치는 서주대학살은 마치 전두환의 광주같은 치명적 악점이되죠. 유비야 성씨는 유씨라지만 돗자리 만들어팔고 협객노릇하던 민중들 입장에선 어느동네에나 있던 젊은이 상이구요. 다시말해 전형적 중국식 영웅상이다. 유비도 결국 한을 품고 스러졌으며 흙수저가 천하를 잡았던게 5천년 역사에 유방과 주원장 단 둘뿐이었다는 사실이라던가, 유비가 속이 검었건 말았건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은 수천년간 유비는 속이 검지 않다라고 대대로 세뇌하면서 역사왜곡하길 택할걸요?
  • 말초 2019/02/14 09:11 #

    후한 말기는 계층 분업화가 이뤄지던 시대였습니다 - 같은 귀족도 같은 귀족이 아니라서.. 진짜 몇대에 걸쳐 삼공 같은 고위직을 독점하는 양표, 원소, 원술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몰락해서 농민이 되는 귀족도 있었습니다.

    조조의 경우, 일단 집이 졸라 부자였던 것은 맞는데.. 환관 출신이라서 청류의 이너서클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괜히 조조가 허소 같은 사람들 찾아가서 월단평 해달라고 땡깡을 부렸던 것이 아닙니다 ㅋㅋ

    유비의 경우, 이 사람이 돗자리 짜고 일단 귀족 아닌 것은 맞는데 - 노식 밑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도 그 시대에 대다수 농민들은 절대로 누릴 수 없었던, 엄청난 호사가 맞습니다. 물론 그래봐야 진짜 이너서클의 사람들에겐 듣보잡 취급을 받은 것도 맞지만. 요즘으로 치면 이력서에 한줄 넣을 수 있었던 특권이었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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