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王)이 될 수도 있었던 주유 N.O.T.E




먼저... 위나라의 조조나 촉나라의 유비는 개국 과정에서 군주의 역할이 너무 컸다。조조 없는 위나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유비는 비록 조조만큼 잘 싸우진 못했으나 구심점으로서 대안이 없었다。그런데 손권의 경우, 이게 이야기가 조금 많이 다르다。유비와 조조는 First of Them 이라면, 손권은 그저 One of Them 이랄까 =3= 

그럼 손권은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됐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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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이백년에 손책이 암살되자 손씨 세력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손책의 아들은 너무 어렸고, 손씨 일족도 후한 말기에 급성장한 신흥 집단이라 양주의 명문가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그간은 철저하게 손책의 카리스마에 의지해 나라를 세웠는데 그 손책이 사라졌네? 손책은 손권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장소와 주유에게 손권의 보필을 당부한다。

그런데 왜 하필 장소와 주유였을까 - 물론 두 사람이 유능했던 것도 있지만。두 사람의 지역 기반이 오나라의 본진인 양주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 두고 있음에 주목해야지 않을까 =3= 장소는 서주 출신, 주유는 양주 출신이나 조상은 대대로 낙양에서 벼슬했다。

만약에 노숙이나 육손처럼 양주에서 세력을 가진 명문가에게 후사를 맡겼으면, 손씨가 그대로 병합될 수 있었다。고로, 유능하면서도 손씨 일족을 병합할 수는 없는 - 정치적 한계가 있는 인사를 물색한 결과가 바로 장자포와 공근이었으며。그만큼 손권이 가진 권위나 명망은 적었다。손책의 인선은 통했고, 두 사람의 보좌로 손권은 손씨 세력을 승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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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8년 후, 적벽대전이 발발하는데 -

손권은 유비와 연합하여, 조조라는 당대 최강의 군웅을 격퇴하고 손씨 세력의 독립을 지켰다。소수의 사람만 예측했던 기적과도 같은 승리였으나, 이 전쟁의 영웅은 손권이 아니라 주유였다。당연히 주유의 명망이 대단히 높아졌는데 - 이 시점에서, 손권과 동맹이었던 유비가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을 하나 슥 던진다。


공근은 문무와 계략이 모두 뛰어난 사람이니 그 기량을 생각하면, 필시 오랫동안 신하로만 남지는 않을 겁니다


이 말은, 적벽대전이 끝나고 유비가 손권을 독대하면서 한 말이다。아쉽게도 손권의 반응은 기록되지 않았는데, 주유를 손권에게서 빼는 시도는 조조도 했었다。장간이라는 변설가를 보내 주유를 설득했으나 장간이 오히려 주유의 인품에 감동해 하릴없이 돌아온 일이 있었다。참고로, 유비의 저 평가를, 오인(吳人)들은 주유와 손권을 이간하려는 유비의 비방으로 해석했던 모양이다 =3= 조조도 계속 미련이 남았던지 적벽대전 후로도 지속적으로 주유를 비방하는 공작을 펼쳤고。

무슨 말이냐면 -- 유비와 조조는, 주유와 손권의 사이가 그닥 끈끈하지 않았다고 믿었던 것이다。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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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이 끝나자 주유는 형주의 강릉에서 조인을 몰아내고 주둔, 남군 태수를 겸한다。그런데 지난번 포스팅에도 말했지만, 후한 말기에 태수는 그 지역의 왕과 같았다。오(吳)가 지방 행정을 구석까지 완벽하게 장악했던 것 같지도 않고 - 이 강릉은 형주의 서울이라, 역사적으로 형주를 차지한 여러 세력들이 강릉을 중심성으로 삼았다。이후, 주유는 유비를 견제하는데 관우와 장비를 떼서 나에게 달라, 유비를 오군에 억류할 것 등등을 손권에게 요구하지만...

손권은 반대로 유비를 공안 태수에 임명하고 자신의 여동생을 시집보내 유비의 위명을 더해준다。손권의 이런 판단은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노숙이라는 참모의 계책으로 추진된 것이고。아직 조조가 망하지 않았는데 천하의 영웅들을 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만... 이거는 관점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손권이,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유비를, 주유의 코앞에 배치하는 형태로 (심지어 주유는 유비를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도) 대놓고 주유의 계책을 사보타지 한 것이다。

명백히 주유 견제의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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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주유는 손권을 직접 만나서 - 그 유명한 천하이분지계를 제시합니다。손권이 양주를 지키고, 주유가 형주를 건너, 익주의 유장을 공격한다。이후 다시 한중의 장로를 공격하고, 량주의 마초와 동맹을 맺어 -- 동시에 양주, 익주, 량주, 형주에서 북벌군을 일으킨다면? 조조는 방대한 전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럼 오나라가 천통을 하게 된다는 말씀 =3=

그런데... 진짜 역사에 있었던 유비의 촉(蜀) 공략과는 다르게 - 손권이 본진을 지키고 주유가 익주로 들어간다。관우와 제갈공명이 본진을 지키고, 유비가 익주로 들어간 사례와는 반대다。이거는 .. 대놓고 손권은 익주를 도모할 재주가 없고, 주유는 있음을 주유 스스로가 설파하는? - 손권 입장에선 자존심 상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그리고, 이 계책이 만약 진짜로 성공하면 주유와 손권의 관계는 마치 한신과 한고조의 관계가 된다。주유는 익주의 군권과 민정을 담당하는 익주의 왕이 되고, 유비가 공안에서 버티는데 양주의 손권이 무슨 수로 익주의 주유를 통제할 수 있을까。

명망, 무훈, 실력, 심지어는 인품까지 주유가 손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는데。뭣보다도 오(吳)는 육군이 약했으나 익주에는 육군, 특히 궁병이 강했고 강을 지키기 위한 수군도 있었다。양주의 손권은 강한 수군만 있는데 익주의 주유는 강한 수군에 강한 육군까지 확보하게 되면... 주유가 이릉대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은 또 누가 하겠는고? =3=

주유도 이런 손권의 의심을 의식했던지 분위장군 손유 (손권의 사촌)과 함께 가겠다고 했는데 - 사촌 나부랭이를 뭘 믿어 ㅋㅋ 형제끼리도 치고 박는 와중에。그냥 말이 안되고요... 주유는 익주 공격을 준비하던 중간에 갑자기 사망합니다。

그런데 이 죽음이... 좀 뭔가 기괴하다는 말이지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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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후한에서 어린 황제가 있고, 어린 황제를 대행하는 신하가 있었다면。촉나라에선 제갈공명이 유선을 대행했다면。오나라에는 군권을 장악한 한명의 신하 (주로 대도독 소리 듣던)가 있었고 주유가 대도독 전통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그랬던 주유는 36세에 갑작스럽게 요절하는데 이후 주유 후임의 대도독들도.. 곱게 죽지 못하는 양반들이 너무 많았다 =3=



지금 이게 나무위키에 있는 오나라 군권 1인자, 대도독 라인의 명단입니다만 - 이들 중 쉰이 넘겨서 자연사한 경우는 주연, 정봉 말고는 없고。the 정봉도 정봉의 아들이 아버지의 죄를 대신하여 처형됐다。만약 정봉이 생존했으면 역시 곱게 죽지는 못했을 것 같고...

육항은 48세에 자연사를 했는데 -- 물론 이 모든 죽음이 다 음모론이고 독살이고...그럴 수는 없겠으나。아무래도 뭔가 수상쩍다。오나라의 대도독은 사실상 오(吳)의 조조라고 해도 될 만큼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느날 멀쩡하다가 죽는다? 물론 옛날에는 멀쩡한 양반이 갑자기 죽는 일은 흔했으나, 그런 식이면 후한에서 황제들이 젊은 나이에 줄초상이 난 것도 다 자연사, 라는 말씀입니다만... 여기에 여몽은 손권이 죽였다는 음모론도 있거든。

한가지 분명한건 - 이궁의 변에서 볼 수 있듯, 손권은 신하들을 그닥 썩 존중하진 않았고。나라를 위해 공헌한 신하들도 굉장히 의심하고 미워했는데 과연 주유라고 무슨 용 빼는 재주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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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무명병사 2019/08/11 15:22 # 답글

    역시 손권은 호부견자라는 걸로....
  • 말초 2019/08/11 17:51 #

    오나라 멸망에 손권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 시대는 결국 명분, 명망, 사족의 시대 -- 손권은 셋 중 제대로 클리어 된 조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ㅠ 그 난리통에 적벽에서 조조, 이릉에서 유비를 상대로 이긴걸 보면 저력은 확실히 있었는데. 선천적인 패널티가 처음부터 너무 쎘다고 해야 하나 =3=

    이미 손권이 생존했을 때부터 양주 사족들이 하나 둘 북조(北朝)로 투항하는 일이 심각한 문제였고 - 대충 시작부터 망했던 걸 손권이 멱살 잡고 캐리했는데 그 공이 너무 낮게 책정된 것 같아 아쉽습니다 ㅠ
  • virustotal 2019/08/11 17:13 # 답글

    원소 동네바보 아들관리도 바보 ....
  • 말초 2019/08/11 22:14 #

    원소가 그런데 생각보다.. 천통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조조도 진짜 망하려고 했었고... 대다수가 원소가 이길거라 예측했고 =3=
  • 無碍子 2019/08/11 17:59 # 답글

    손책생전에는 노숙과 육손이 임관하지않았다고 알고있습니다만.
  • 말초 2019/08/11 19:19 #

    for example, 이라는 것이지요
  • 함부르거 2019/08/12 00:05 # 답글

    확실히 손권이 이궁의 변 같은 막장 짓거리를 해가면서 자기 권력을 지키려고 했던 것은 그만큼 기반이 불안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렇더라도 그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만.
  • 말초 2019/08/12 09:05 #

    그런데 후한 말기부터 16국 시대에는 이런 일이 많았습니다 -- 충신인줄 알았던 놈이 실권을 잡으니까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 그런 일이 정말 많이 나오거든요..

    이 전통은 전한(前漢)의 왕망이 처음 시작했는데 - 우리 쓰마즁다(사마중달) 선생만 하더라두.. 진짜 충신도 이런 충신이 없었는데 조방처럼 어린 조씨가 즉위하니까 바로 배신하는.. 전란의 시대를 끝내고 천하를 다시 통일한 수문제 양견도 원래 북주의 섭정이었는데 황제가 만만하니까 선양 받는... 그런 시대였죠

    오나라는 삼국 중에서 철학적 정통성이 가장 미약했던 나라라서.. 손권은 자신이 죽으면 육손 같은 양주 사족이 어린 황제를 통수칠 것을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궁의 변은 결국 실패였는데 - 육손은 죽였는데 육씨 일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고, 나중에 손권이 육항 불러서 사죄합니다 ㅋㅋ 양주 사족의 세력을 완전히 꺾는데 결국 실패했습니다
  • 함부르거 2019/08/12 19:14 #

    하긴 그 시대에 제갈량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충신이었던 사람이 오히려 드물죠. 그래서 더더욱 추앙받는 것이겠죠.
  • RuBisCO 2019/08/13 10:00 # 답글

    쬬가 잘싸웠다기엔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원히트원더급인게 크게 흥했던 두어건을 제외하면 시원찮았는데 특히 밑에서 쬬를 거스르는 의견을 내는거 자체가 힘들어진 후반기로 가면 이건 그 재원들을 가지고도 한줌도 안되는 촉과 오를 상대로 그거밖에 못하냐는 말이 절로 나오는지라...
  • 말초 2019/08/13 11:11 #

    순욱이 죽고나서 위나라가 더 이상 영토를 확장하지 못하고, 되려 한중처럼 거대한 지역을 한꺼번에 잃는 하향세에 빠지게 되지요 =3=

    위나라는 영토도 가장 넓었고 인구도 삼국 중 가장 많았지만. 조조가 원소, 동탁, 여포 같은 라이벌들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많은 지역이 초토화됐고 (조조의 고향인 초 땅도 조조가 하도 징발해서 엉망진창이었다고...), 그래서 민란도 많았고, 해당 지역의 사족들이 망명하거나 충성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조정 내부의 신하들도 모두 일괄되게 조조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은 아니라. 여기에 오환, 강, 흉노 같은 이민족 문제 등등등등 -- 국가 역량을 백프로 발휘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반대로 촉이나 오는 한중, 장강이라는 자연에 기대어 많은 병력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기 좋은 환경이라. 특히 촉은 비록 실제 영향권이 성도와 그 주변에 지나지 않았지만 국가의 역량을 백프로 발휘하는 제도가 정비되서. 마냥 쉽진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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