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의 난(亂) N.O.T.E





삼국지 위서 무제기는 오늘의 주인공, 위풍이 219년에 일으킨 반란 사건을 진짜 간략하게 전한다。


219년 9월, 상국(相國) 종요가 서조연(西曹掾) 위풍(魏諷)의 반란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심지어, "위풍이 반란을 일으켰다" 라고 직접 말하지도 않고 - 위풍을 천거한 종요가 면직됐으니, 위풍이란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겠군! 이런 식으로 간접 서술했다。위풍 입장에선 상당한 굴욕이 아닐 수 없겠으나 -- 원래 중국에서는 공자의 춘추필법이 오소독스가 됐고。사관(史官)은 정말이지 꼭 필요한 역사적 사실만, 한자의 압축성을 최대한 활용해 최소한의 사실과 사건의 경과만 기록했다。

중국 역사학의 아버지, 사마천 센세가 쓴 명저 사기(史記)조차도 - 협객이나 암살자, 상인처럼 하찮은 사람들의 일대기를 번잡하게 기록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정사 삼국지를 집필한 진수는 위풍의 정권 전복 시도를 반.란. 이 두 글자로 압축해 정통성과 진정성이 조금도 없는.. 야비하고 비열한 협잡으로 한방에 정리한다。근본적으로 위풍의 반란 사건의 내막을 자세하게 전달하지 않은 것도, "이따구 반역자의 인생은 너희들은 알 거 없다" 같은。동양 사관 특유의 오기랄까, 꼰대질이랄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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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이 왜 반란을 일으켰는지 - 정사 삼국지는 말하지 않는다。말하지 않았다는건 말하고 싶지 않았다는 뜻이다 ㅋㅋ 촉나라나 오나라도 아니고 중국의 문화 중심지를 독점한 위나라에서。그것도 삼국지에서 가장 기록이 풍부한 조조를 노리는 반란 사건의 전말이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정사 삼국지보다 훨씬 후대에 나온 속후한서에는 위풍이 한(漢)을 구하기 위하여 애국 열사를 모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정사 삼국지는 서진(西晉) 초기에, 조위(曹魏)를 정통으로 삼아 기술된 사서이고 - 위나라의 명분은 후한의 마지막 황제, 효헌황제 유협에게 조비가 선양을 받았다는 것이다。그런데, 위풍이란 자가 후한 복고를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면? 뭔가 위나라의 체면이 구겨진다。그리고 위풍은 내부자 고발로 실패했는데 그 내부 고발을 처음 접수한 사람이 바로 조비였으니。후한->조위->서진으로 이어지는 정통성 흐름이 도덕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정사 삼국지는 그걸 감추고자 위풍의 난을 결과만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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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위나라를 상시 계엄 상태로 운영했고 - 위(魏)에는 한(漢)이라는 내부의 적이 있었고, 고로 위나라는 각종 반란이며, 내란이며, 암살이며 .. 조야가 늘 비상이었다。이런 가운데 굳이 위풍의 난만 굳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이 반란은 그 전에 있었던 반란하고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첫째로는, 위풍을 천거한 사람은 바로 위나라의 공신이자 후한의 귀족 출신인 종요이며
둘째로는, 조조의 제거가 아니라 위나라의 수도인 업도 확보를 시도했고
마지막으로는, 위풍의 반란은 위나라 공신들의 자식들이 많이 가담했다


즉, 기존의 반란은 한(漢)을 지지하는 세력과 조(曹)를 지지하는 세력간의 충돌이라면 - 이번 반란은 위나라 개국에 공헌한 공신들의 자식들이 가담하면서。조조에게 아주 거대한 개쪽을 줬다。여기에 가담한 대표적인 사람들을 나열하면 대유학자 송충의 두 아들, 건안칠자 왕찬의 두 아들, 유이의 동생, 완성에서 조앙과 전위를 잡은 장수의 아들까지 .... 이 사건으로 the 가문들은 그대로 대가 끊겨서 친척이 후사를 이었다는데。불과 반년 전에는 하후연이 전사(戰死) 하고, 한달 전에는 번성에서 관우가 우금을 사로잡아 조조가 천도까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위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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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반란의 주역인 위풍은 누구인가? 반역자에게는 자비 없는 정사 삼국지는 위풍에 대하여 거의 말하지 않고。남송(南宋)의 학자였던 배송지가 작성한 주석과 다른 역사서에 조금씩 위풍에 관한 기록들이 있어 그 조각들을 모아보면...


위자경(위풍)은 패국 출신이란 설도 있고, 제음 출신이란 설도 있는데 - 말을 굉장히 잘했으며 특히 선동에 일가견이 있었다。정사 삼국지는 이런 위풍의 재능을 사람을 미혹한다, 사악하고 멸망하는 말을 한다, 간사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수양을 닦지 않고 사람 모으기만 잘한다 같은 식으로 매도하고 있지만? 이 사람은 정통 유학자이자 후한 명문가인 종요의 천거로 조조에게 출사한 사람이다。종요도, 조조도 위풍이 필요했단 뜻이고 가만히 보면 각종 혹평들도 묘하게 "말 잘한다" 라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조조는 그럼 왜 내적인 충실함을 갖추지 않은, 이런 간신배를 임용했을까 - 군(軍), 민(民), 관(官)에 걸쳐 반조(反曹) 세력이 불만을 품고 있으니 위풍의 말솜씨로 그들을 선동, 설득하자는 생각이지 않았을까。원래 난세에는 진평 같은 사기꾼도, 영포 같은 무뢰배도 쓸만하면 발탁하는 법이니 그 사람의 내적인 가치나 충실함은, 이런 난세에는 그야말로 개나 주는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데...

위풍은 그 대단한 선동술을 조조를 위해서 쓰지 않고 후한을 위해서 썼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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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 위풍은 소싯적에 무려 간웅(姦雄)이란 인물 평가를 받았다! 흔히 간웅하면 조조가 유명하지만 위풍이 the 간웅 타이틀을 당당히 쟁취(?)하면서, 위나라에는 무려 2명의 간웅이 있었던 것이다。당시 위나라에는 수도로서 기능할 수 있는 도시가 크게 4개가 있었는데 - 낙양, 장안, 허도, 업도로 장안에는 조조가, 허창에는 한헌제가, 그리고 업도에는 조비가 있었는데 위풍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조비는 그대로 목이 업도 성문에 걸리고 위풍은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를 수 있었다。

이때는 한창 위나라가 관우에게 포위 된 번성을 구하기 위해 각지의 병력과 장군들을 남파하느라 분주했고... (결국 1차로 출발한 서황 라인에서 정리가 됐지만) 만약 업도가 넘어갔음 서황은 번성이 아니라 업도 구원전에 투입됐을테고, 그외 여건이나 하후돈 같은 2차, 3차 구원대도 온전하게 번성에 투입될 수 없었을 것이다。업도는 한복, 원소는 물론 조조도 수도로 삼을 정도로 번창한 도시이자 위나라 실권의 중심이고 -- 오호십육국 시대에도 여섯 국가가 수도로 삼았을 정도로... 절대 쉽게 공략할 그런 성이 아니었다。

만약에 위풍이, 간웅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어쩌다가 서황이라도 격퇴하면? 남쪽의 관우와 호응하면? 조조 입장에서는 기각지세에 빠지게 된다。이때 위나라 각지에선 반란이 들불처럼 일어나 허도 남쪽에도 도적떼가 창궐하고 그들이 관우와 접촉해 도장(벼슬아치의 증명)을 받을 정도였으니... 이 반란이 싱겁게 끝난 일은 관우의 입장에선 심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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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정사 삼국지에는 단신 처리된 기사들이 많고, 그것들을 한자의 압축성을 해체하여 면밀히 살펴보면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앞으로 기회가 되면 하나씩 풀어 볼 생각이다 =3=

덧글

  • 2019/09/08 21:51 # 삭제 답글

    갠적으로 관우의 공격에 천도 운운할 정도로 조조가 오버한건 조위내에 이런 인사들을 의식했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위풍 혹은 그와 같은 입장내에서도 이런 기회는 흔치않았을것으로 보입니다.
  • 말초 2019/09/08 23:55 #

    저는 관우의 위협이 진짜였다고 생각합니다 - 천도도 조조가 굉장히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우금이 이끌었던 7군이 깡그리 잡혔고 - 이 7군의 규모가 대략 3만 5천에서 4만 정도 되고 정예병이었습니다. 우금도 장료, 악진, 서황, 장합과 같은 반열에 오른 명장이었고 방덕까지 죽은 상태에서. 이후 추가로 투입된 서황군은 반대로 신병(新兵) 위주라 서황이 고생했다는 기록도 있고... 뭣보다도 7군 궤주 사건에서 관우는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서.

    위나라측에서는 중달이나 장제 같은 참모들은, 우금의 패배는 홍수 때문이다 - 라고 위로하는데. 제가 보기에 이건 그냥 위로용 멘트이고 (홍수로 전멸하든 교전으로 전멸하든 전멸은 전멸). 온회 같은 참모들은 관우가 용맹하니 기세를 타고 북상하면 큰일이라고 걱정합니다.

    관우가 만약 번성을 함락하고, 그 다음에 양양을 접수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 이후 한중에 주둔하고 있는 유비가 장안, 마초가 량주, 관우가 허도를 공격하고 손권이 서주를 공격하면 (조조는 손권이 유비를 배신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병력이 분산되고 유비, 관우, 손권을 상대하는 전선 중 하나라도 돌파되면 그대로 적군이 중원에 침투하는데. 중원은 생산력이 풍부하지만 평야가 넓고 장강이나 검각 같은. 끼고 버틸만한 지형지물이 없어서... 여기까지 가면 진짜 끝장이거든요.

    뭣보다도 조조 이 양반은 은근히 마음이 섬세하여 관도대전에도 안될 거 같으니까 허도로 회군하려지 않나.. 뭔가 안되면 본진으로 물러나서 대책도 없이 결사항전 한다는 태도를 자주 보여줍니다
  • 2019/09/09 10:40 # 삭제

    그냥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번성공격까지가 공세종말점으로 보이거든요.
    우리 손제리씨 기습전에도 대치중인 두 세력 모두 이렇다할 모습을 못 보여주거든요.
    그럼 어찌 어찌 서황을 막아도 이어서 오는 지원세력에게 패하지않을까싶어요.
    아마도 그런 대치국면은 유비는 지원을 못할것같고 역사처럼 손제리가 손 들어주는 쪽이 이기지않을까 싶습니다
  • 말초 2019/09/10 08:00 #

    저도 관우가 왜 중간에 퇴각하지 않았는지 참 궁금합니다 - 우금을 잡는 선에서 물러났어야만 했는데. 촉나라 기록이 워낙 부족하여 실상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추측을 해보면

    1. 번성은 그야말로 함락 직전
    2. 형주를 지키는 미방과 사인이 물자를 제때 보급하지 못해 마지막 한방을 날리지 못함 ->미방과 사인이 물자를 보내면 한방을 날릴 수 있음
    3. 서황의 부대는 새로 징집한 병력 위주
    4. 위나라 각지에서 자신과 호응하는 저항 세력이 거병
    5. 만약 자신이 위나라 군대의 어그로를 끈다면 해당 지역의 수비는 약화되고
    6. 그 약화된 지역을 유비나 손권이 공격하면 그건 그거대로 만족

    이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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