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 꼭 해야 해? N.O.T.E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세용)

지금 이 이미지는 만화 창천항로에서, 정군산 전투를 앞두고 하후연과 유비가 토론하는 장면 -- 하후연은 유비에게 서촉(西蜀)은 풍요롭고 지세가 험하지만 생산력은 풍요롭다. 고로, 전쟁 집어치우고 그 땅이나 발전시켜라. 혹시 아냐, 촉나라가 새로운 중국의 될 수 있을지도? 라고 설득(?)하는 모습이다.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하후연의 주장은 틀렸소.

이유는 간단하다 -- 유비가 아무리 서촉에서 독립하고 싶어도 조조가 그냥 두지 않을테니까. 중국의 영토가 "10" 이라면 조조는 그 중 "8" 가까이를 먹었는데. 서촉이 아무리 지세가 험하고 풍요로워도 싸움이 되지 않네. 고로, 조조가 죽어야 유비가 산다. 하후연의 분리주의 사상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 위나라 지배층이 "서촉은 오랑캐 땅"으로 인식해야지, 회복해야 할 중국의 옛 땅으로 인식하면 안된다.

그러나, 조조는 물론 사마염까지 촉나라, 오나라를 회복해야 할 옛 영토라고 여겼으니, 삼국이 평화롭게 공존하는건 요원한 일이었단 말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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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기서 - 굳이 통일을 해야만 하나? 삼국이 그냥 각자 자신의 지역에 할거하여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은 없었나. 결론부터 말하면 할거주의는 삼국지가 시작되기 한참 전에 이미 결론이 났다. 여기서, 역사상 최초로 통일 중국을 만든 진시황이 등판합니다만...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고서, 중국을 어떤 식으로 다스릴지를 두고 유가와 법가가 다툽니다. 유가는 주나라 체제를 이상적인 정치 모델로 삼았으니 봉건제를 지지하고. 이사는 중국의 미래가 군현제에 있음을 주장하여 진시황이 군현제를 실시한다.

원래 법가 사상에서, 국정의 주체는 황제다 - 황제가 정치를 주도하고 황제가 결정하고 황제가 다스린다. 신하는 황제의 정치를 하달하는 아전에 지나지 않는다. 황제가 아버지라면 신하는 노예의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유가 사상에서는 국정의 주체는 황제와 신료다. 황제가 아버지라면 신료는 어머니의 역할을 맡는다. 고로, 유가 사상가들이 많이 해먹기(?) 위해서는... 황제가 권력을 분산하여 신료들에게 나눠줘야. 지방 자치제를 실시해야 이야기가 통한다. 봉건제는 봉방건국(封邦建國)의 줄임말로 - 쉽게 말해 지방에 여러 나라를 세운다는 뜻이다. 나라가 여럿이면 왕도 여럿이고, 아버지가 여럿이면 어머니도 여럿이다. 고로, 봉건제는 일자리 창출 정책이기도 했단 말씀 =3=

아무튼 진시황이 봉건제를 실시하면서 최초로 통일된 중국이 탄생합니다만 - 이 군현제라는게... 나쁘게 말하면 대륙 전체가 황제의 직할령으로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착취할 수 있게 됐단 뜻이다. 군현제를 통해 중국 전역의 인구와 세금을 징발할 수 있었고, 그래서 아방궁이나 만리장성 같은 대규모 공역을 착착 진행할 수 있었고. 이게 황제의 입장에선 참 좋습니다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진짜 죽을 맛이라 ㅠ

그래서 진시황 죽고서, 진나라 타도를 명분으로 일어난 반란군에 가담한 지식인들은, 군현제 폐지를 시대 정신이라 믿었다.
그리고 항우가 진짜로 진나라를 타도했네? 그 정도로 군현제와 통일 제국에 대한 여론이 너무 나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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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가 진나라 시대를 끝내고, 공신 18명을 선발하여 그들을 제후왕에 봉하고 항우 본인은 초패왕(楚覇王)이 됐다. 역사가는 항우가 지방 군벌들의 자치권을 보장하여 중국을 분열시켰다고 욕하는데. 항우는 어쩌면 그 당시의 사람들의 니즈를 받은 것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다 =3= 사람들은 진나라에 시달렸고, 진나라가 사람들을 괴롭힌 비결이 군현제였으니 -- 진나라를 타도한 마당에 군현제를 다시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반진(反秦)에 있어 항우의 무훈이 엄청나게 컸음에도, 항우 스스로도 황제에 취임하지 않았고 왕에 만족했다.

항우도 사람들의 요구에 부합하고자 스스로 많은 권력을 양보했으나. 한중왕 유방은, 천성이 건달이라서 그런 거 잘 몰랐다 =3= 만약 여기서 항우가 승리했음 중국은 할거의 시대로 갔을테지만. 역사는 유방의 손을 들었다. 그럼 유방은 뭘 믿고 군현제를 밀어붙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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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실 유방이 아니라 장자방(장량)의 아이디어였다.

장자방은 중국의 시대 정신이 군현제 폐지가 아니라 군현제 연장에 있다고 믿었다. 장자방을 적극 신뢰한 유방답게 한(漢)이 천하를 통일하자 그 의견을 채택했고. 다만, 사람들의 여론이 너무 나빠 군현제와 봉건제를 섞은 군국제를 실시하는 선에서 만족했다. 여기서 중국은 하기에 따라 통일된 제국으로 갈 수도 있었고, 샤를마뉴 사후 프랑크 왕국처럼 분열된 봉국으로 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유방이 사망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한(漢)은 대륙 전체를 진시황처럼 다스릴 수 없었고 황제 직할령만 통치할 수 있었는데. 한문제, 한경제 시절에 이르러 한(漢)의 경제가 회복되고 제도가 정비되면서 -- 한나라 중앙은 지방에 할거한 제후왕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154년, 한고제가 죽고 40년쯤 지나서 -- 지방에 옹립된 유씨 제후왕들이 자치권을 요구하며 거병한 오초칠국의 연합군이 한나라 중앙군에게 진압된다. 중국이 통일된 단일 질서, 단일 문화권의 제국으로 확정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제 중국이 하나라는 사실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한나라가 망해도, 수나라가 망해도, 송나라가 망해도 -- 한(漢)이 정립한 통일왕조 모델을 중국인들은 오늘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덧글

  • 명탐정 호성 2019/10/21 00:04 # 답글

    대륙에 안정을 가져올려면 삼국을 통일해야함
  • 말초 2019/10/21 10:06 #

    서진 망한거 보면 통일이 꼭 안정을 가져오진 않는듯 ㅠ
  • 00 2019/10/21 00:27 # 삭제 답글

    창천항로는 작가가 외부인의(병신같은)시선을 위나라사람입을통해 말하게 하곤 어때 획기적이지 않아? 라고 강요하는 병신만화라....지적하신대로 왜 중국이 하나로 되고싶어하는지에대한 고찰같은건 없이 그냥 시대에서 벗어난것=뛰어난것 이라고 해버리고 그걸 조조측으로 나타내니 사람들이 정작 조조는 인간같지도 않은 메리수 자딸캐라그러고 오히려 유비 관우 빠만 늘어나는 그냥 간지와 가오가 모든걸 지배하는 만화
  • 말초 2019/10/21 03:48 #

    조조 신격화만 하지 않았어도 굉장히 볼만했을텐데 ㅠ
  • 나눔팁 2019/10/25 05:15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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