鷄肋 N.O.T.E





지금부터 쓰는 글들은, 하나의 포스팅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분량이 짧고.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안타까운? 조승상이 말한 계륵 같은 포스팅 모음집입니다 =3=



황건적

지금까지 황건적은 농민이 주축이 된 반봉건(反封建) 농민 운동... 동학 운동 후한 말기 에디션으로 알려졌지만? 책을 좀 더 찾아보니 어쩌면 황건적의 주축은 농민이 아니라 상업이나 운송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일수도 있다는 가설을 발견했다. 황건적이 전국 각지에서 거의 동시간에 봉기하는데. 그때의 교통 레벨에서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래도 해냈으니 -- 황건적이 교통 정보에 굉장히 빠싹한 인물들로 구성됐다는 추론을 해볼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씀 =3=

흔히 중국에서 피지배층의 반란을 무조건 농민 반란, 농민 거병, 농민 운동.. 이렇게 농민이 다 했다고 하는데. 의외로 고대 중국에서도 피지배층의 계급이 다양하여 농지를 경작하지 않고도 육체 노동이나 운송업, 상업, 도축업, 밀매업 (이건 범죄지만) 등등에 종사하는 전문 직업인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특히 중국 중세 시대부터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지는데 -- 당나라의 황소처럼, 소금 밀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특히 소금 밀매업자가 반란을 선동하는 일은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시대에도 이어진다.

중국 역사에서 발생했던 많은 반란은, 농민이 주축이 아니라 실업자가 주축이었다는 흥미로운 설입니다.


사마중달과 양수

양덕조(양수)에 관한 포스팅은 나중에 할 계획입니다만. 조비와 조식이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툴 적에 -- 양수, 정의, 정이는 조식을 돕고. 가후와 사마중달, 최계규(최염)은 조비를 도왔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각자 깊고 얕게 후계자 전쟁에 발을 담그고 있었지만 지모의 둘째가라면 서러운 가후와 사마중달을 상대로 두뇌 싸움을 벌인 양덕조의 능력은 분명히 재평가 받을 여지가 있다. 심지어 조식이 거의 이기고 있었고.

문제는 사마중달... 이 사람, 조조의 의심을 받고 있었고. 조비도 의심했고. 친동생 사마부는 조식의 문학연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굳이 조조가 총애하지도 않는 조비를 도와 조비를 후계자로 만들었으니.. 이 사람은 진짜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책을 읽었길래 이런 엄청난 레벨에 이르렀는지... 사실, 조비와 조식의 후계자 다툼에서 양수를 비롯해 최염, 모개 등.. 많은 관료들이 조조의 심기에 거슬려 죽었는데 - 사마중달은 이 정국을 무사히 돌파했다. 이걸 보면 사마중달이 확실히 일단 양수보단 머리가 좋았다.


관우와 장비

삼국지에서 최강의 무인을 뽑으라면... 역시 관우와 장비다. 무려 정사 삼국지에 만인적(萬人敵)이라고 기록됐는데 - 원래 중국에선 관료가 각 잡고 작성한 사서는 지루하다. 최대한 객관적이고 편향적이지 않은 단어만 골라서 사건의 선후관계만 간결하게 기록하는데... 그런 정사 삼국지에도 '만인적'이라는 칭찬이 기록될 정도면.. 이 두 사람의 무공은 진짜 엄청났다는 뜻이다.

문제는, 정사 삼국지에서 이 두 사람의 과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장비는 몰락한 귀족 출신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거 근거가 없습니다. 관우와 장비, 두 사람 아무리 봐도 사회적 신분이 높았을 것 같진 않고. 전문적인 군사 교육을 받지도 않았을 것 같다. 초기 관우와 장비는 마치 번쾌나 허저처럼, 유비를 보호하는 -- 나쁘게 말하면 필부의 용맹에 의지하는 무사였다가 난세에서 산전수전 겪으면서 삼군을 이끌 장군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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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장비는 유주 탁군 출신이고 관우는 사례주 출신이나 유주 탁군으로 망명했다고 한다. 고로, 세 사람 모두 소싯적에 유주 탁군에서 좀 놀았다는 것입니다만.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말씀에 의하면, 유주 탁군이 말(馬) 생산지로 유명했고 말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도적과 짐승의 습격에서 말을 경호할 수 있는 경호원이 전도유먕한 직종이었다고 한다. 유비, 관우, 장비가 그런 업종에 종사한 것은 아니었을까.

참고로 초한지의 관영도 비단 운송업을 하면서 도적과 짐승을 상대로 재산과 목숨을 지켜야만 했고, 경우는 다르지만 여포는 흉노와 충돌이 잦은 병주에서. 동탁은 강족이 자주 출몰하는 량주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험한 환경에선 역설적으로 영웅이 나오기 좋다. 물론 한명의 영웅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그렇지...

덧글

  • 2019/11/06 12:46 # 삭제 답글

    그 사마의 얘기는 지극히 결과론적이죠.
    관심법을 쓰지않고서야 조조속은 몰랐을 것이고 조식이 이겼으면 말씀하시는 그 평가를 반대편이 받았겠죠.

    관우, 장비는 건달, 무뢰배들이 자경단을 거쳐 입신양명을 한 것이죠.. 개네만 그런 것도 아니고 손가는 아예 지역깡패가 토호가 되어 건국한 것이니 시대가 그런 것이죠.
    그럴 기회도 없던 민중은 지옥도였겠지만요
  • 말초 2019/11/07 10:51 #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일단 조조가 조자건(조식)을 총애했다, 조조가 중달을 의심했다, 조비도 중달을 의심했다는건.. 사서에 당당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이거를 부정하긴 어려울 거 같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조조가 총애하는 자식의 라인에 들어가 조조의 칼날을 피하려고 하지. 굳이 조조의 관심이 없는 아들에게 들어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것도 자기 동생이 조자건 밑에서 일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일반인의 상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선택을 했고, 결국 이겼다는 거죠. 이거는 확실히 대단한 업적이라 생각합니다.
  • 2019/11/07 18:13 # 삭제

    사마의가 능력있는 사람이란건 부정할 수 없군요.
    말씀에 딴지를 걸려면 걸 수도 있는 게 사마씨 입장에선 분산투자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거든요.
    뒤의 진 건국 과정에서도 사마부는 위의 충신...이 되기도 하고 제갈형제같이 서로 다른 나라를 섬기기도 하는데 자기 동생이 다른 주군을 섬기는데 조비를 선택한 것 가지고 높게 평가할 건 없다 생각합니다.
    조비가 중달 의심하기전엔 애초에 친하게 지냈잖아요.
    그냥 자연히 조비라인이 된 것이고 사마씨 입장에선 분산투자.
    라 생각합니다.

    사마의의 능력은 군사, 명분을 쟁취하는 능력이고 처세술도 물론 뛰어나지만 그의 성공은 운도 무시못할 요소라 생각합니다.
    군부에서도 조씨인척이 소멸되지않거나 제갈량이 그의 임무시기에 병사하지 않으면 그만한 파워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조방 보다 더 정통성 있는 군주가 있거나 조상이 더 세게 나갔으면 고평릉도 그렇게 안 끝났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인물의 성공에 대해 이 사람이 이렇게 대단해서 성공했다보는 건 한계가 있는 분석이라 생각합니다.
    그 인물이 선택을 못하는 상황, 운 혹은 불운 같은 요소도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말초 2019/11/07 20:07 #

    분산 투자설은 저도 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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