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논란 N.O.T.E




정사 삼국지는 관우와 장비의 죽음이 그들의 성품이 불러온 자업자득이라 혹평한다 - 관우는 강이자긍(剛而自矜)하고 장비는 폭이무은(暴而無恩)하여 망했으니 비참한 최후가 당연하다는 말까지 한다. 그런데 정사 삼국지 전체를 천천히 읽어보면? 일단 오늘의 주인공 관우가 진짜로 강이자긍한 인물이었는지, 그걸 의심하게 만드는 모순된 기록들이 행간에 숨어 있다. 

일단, 정사 삼국지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다! 관우와 장비의 성격을 각기 '강이자긍', '폭이무은'이라 평가한 바로 앞에 두 사람이 모두 국사(國士)의 풍모가 있었다고 칭찬한다. 이 '국사'라는건,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대부를 뜻하는데 -- 의롭고, 현인(賢人)을 존중하고, 문사(文士)들을 대접하고, 공부에 게으름이 없고, 재물을 가볍게 여기는 위인들이 국사로서 존경받았다. 동시대, 국사라 칭해진 사람들로는 능통, 팽양, 장흠, 여몽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신분이 낮았고, 담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비록 신분이 낮았고 담력에 의지해 관직에 임용됐으나 - 꾸준히 인품과 학식을 갈고 닦아, 다른 사대부를 존중하는 개천용들을 국사라고 부르는게 그 시대의 풍토였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현인을 존중하고 문사를 대접한다"는 부분이.. "사대부에게 오만했다" 라는 관우와 뭔가 매치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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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사례로 들어가면, 관우가 형주를 다스릴 적에 미방, 부사인, 반준하고 사이가 나빴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오나라에 투항했으니 관우의 성품이 세사람을 궁지에 몰았고, 이 세사람이 투항하면서 관우가 망했으니 이게 다 관우의 잘못이라는 논리입니다만. 그런데, 일단 미방과 부사인은 출정을 앞두고 군수물자를 불태운 원죄가 있고 -- 동오에서도 두 사람의 투항을 그닥 높게 치지 않았다. 우번은 미방과 우금에게 묶어서 망신을 줬고 (손권이 만류하긴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우번 앞에서 뭐라 해명을 못했다. 우번은 미방에게 "충성과 신의를 잃고 무슨 수로 군주를 섬기냐?" 라고 대놓고 깠거든.

반준의 경우, 양주 출신이 해먹는 동오에서 무려 승상까지 갔으니 경우가 다르지만. 반준은 미방, 부사인하고는 다르게 손권에게 투항을 끝까지 거부했다. 형주가 함락되자 다른 관원들이 변절해도 반준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고.손권이 직접 반준의 집을 찾아가 억지로 끌어내 비로소 손권을 섬겼다. 계한보신찬에 의하면, 촉인(蜀人)은 이 삼인방 모두를 '배신자'로 취급했으나 -- 미방은 적극적으로 항복하고, 부사인은 적에게 속아서 항복하고, 반준은 단순히 오나라에 들어갔다(원문은 入) 라고 표현한다. 

즉, 관우와 3인의 갈등에서 정사 삼국지는 일단 "사대부에게 오만하다"는 이유로 관우를 비판하지만 - 행간을 보면 저 삼인방 개개인에도 처세에 상당한 책임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는 말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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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그 출처가 대부분 오나라 기록들이다. 이 당시 삼국은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려는 목적에서 고취곡(高就曲)를 만들어 보급했는데 주로 자국의 군주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리즈 시절, 군사 커리어가 정점을 찍을 때, 생애 최대의 승리를 노래 가사로 만들었다. 가령 위나라의 고취곡은 하비에서 여포를 사로잡은 일, 관도에서 원소를 격파한 일을 가사로 적었는데 오나라에서는 적벽대전과 관우를 사로잡은 일을 고취곡의 가사로 썼다.

그런데 이 가사 내용은, 굉장히 편협한 사관(史觀)에 근거하여 작성됐다 - 가령 위나라는 서영에게 패한 형양 전투도 고취곡의 가사로 썼는데, 조조의 패전(敗戰) 흑역사를 군가로 사용한다고? 싶겠으나. 서영에게 대판 깨졌다는 역사하곤 달리 조조가 서영을 격파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쌩구라를 친다. 오나라의 고취곡도 마찬가지다.

오나라의 고취곡 가사는 손권은 촉나라와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했는데 -- 관우가 양국의 우호를 이간질하고, 오나라의 은덕을 배신했으니 손권이 토벌할 수밖에 없었고. 손권이 관우를 죽이자 양국이 다시 우호 관계를 회복했다고 한다 (?!) 그 외 정사 삼국지에도 노숙전, 여몽전, 육손전 등 특히 오서(吳書)에는, 관우가 충동적이고 난폭하고 도저히 종 잡을 수 없는, Crazy Man 으로 묘사된다. 홧김에 군대를 일으켜 건업을 침공할 거 같은, 또라이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오나라 사람들이 관우를 얼마나 미워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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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런 평가는 정당한걸까 -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일단 동오는 손책 시절부터 형주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고, 정사 삼국지에도 손권이 유비를 상대로 형주 문제를 두고 교섭했으며 -- 유비는 관우를 통제하지 않았다. 관우가 오나라 관료들을 상대로 보여준 오만한 태도들은 사실 유비의 허락 하에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다만, 오나라에서는 형주를 감독하는 관우를 하나의 독립된 제후로 취급했는데, 유비와 외교 활동을 하면서도 관우에게도 동시에 접선하거든. 관우에게 혼담을 제안한 일도 이런 관점의 연장선인 것 같다.

그럼 정사 삼국지는 왜 오나라의 입장만 반영하고 관우, 촉나라의 입장은 반영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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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나라의 입장이라는 것이 없었으니까 =3=

당시 촉나라에는 위나라, 오나라처럼 사관(史官)이 없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많은 기록들이 유실됐고 이것은 촉나라의 기록이 삼국 중 가장 빈약한 원인이 됐다. 비록 정사 삼국지를 작성한 진수가 촉나라 출신이지만, 없는 기록을 지어낼 수는 없으니 관우에 대한 기록도 좋든 싫든 오나라와 위나라의 기록물을 1차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관우는 정말로 오만했을까 - 관우가 한때 조조를 섬기고 안량을 베자 바로 유비에게 귀순하잖소? 그때 관우는 조조의 세력권에 머물고 있었음에도 "나는 유비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유비에게 돌아간다" 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조조가 분노하여 관우를 죽일 수 있었는데도, 조조가 "저 사람은 도저히 내 사람이 될 수 없다" 라는 실망감에 관우를 죽일 수 있었는데도. 관우는 조조를 속이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말했다. 조조도 이런 관우의 기백에 반했는지 관우를 그대로 돌려보내는 영웅의 도량을 보여주고 말이다.

이런 관우의 성품은 지나치게 정직하고 의롭다 못해 오만하다 싶을 정도로 타협하지 않는 태도였고, 이것이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불쾌하겠지만. 공감하는 사람 입장에선 관우의 인품을 존경하게 되고 -- 이것이 많은 중국인들이 관우를 흠모하고 모범으로 삼는 원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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