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後漢)의 마지막 황제 N.O.T.E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유협은 그냥 보물 취급이다. 플레이 할 수 없고, 확보하면 여러 이벤트가 일어나는 -- 국가가 소유하는 아이템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를 기준으로, 유협은 자신의 직할령이 없어서 그렇지 군웅할거 시대의 유력한 대권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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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 사후(死後) 수도를 장악한 이각과 곽사가 불충하게 굴자, 유협은 장안을 탈출하는 똘끼 짓을 과감하게 저지르셨다. 동탁은 그래도 중앙 정치를 이용할 수 있는, 정치적 감각이 있었는데 이/곽은 그런 감각이 전혀 없었고 -- 이들이 유협의 신변을 다시 확보할 경우, 유협을 살려준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때 유협과 함께 탈출한 관료들도 다 이/곽의 추격군에게 죽어 유협과 동승을 포함해 생존자가 열명도 안되는 긴급한 상황이었으나, 유협은 끝까지 이/곽에게 항복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곤죠가 있었더라란 말씀 =3=

황제의 탈주는 이/곽의 추격이 없어도 여전히 위험했다 - 동쪽의 제후들 다수가 반동탁연맹에 참여한 전적이 있고. 유협은 동탁이 한소제 유변을 시해하고 그 대안으로 옹립한 황제였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연의에선 유협이 정통성이 있는 황제라고 합디다. 정사 삼국지도, 후한서도, 조조는 물론 유비도 유협을 정통성 있는 황제로 인정합디다 (2). 그런데 이건 전적으로 선대 황제의 유일한 아들이라 그렇지. 만약 유굉에게 아들이 많았으면 제후들이 유협을 적자로 인정할 필요가 없었다. 정통성 문제를 진짜 진지하게 파고들면 유협도 약점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유협이 동쪽으로 무사히 탈출해도 - 현지 제후가 자신을 보호하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북중국에서 가장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던 원소는 유협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어 유주목 유우를 새로운 황제로 세우고자 했다. 조조는 원소와 동맹이었고, 원술은 칭제의 뜻이 있었다. 한(漢)을 적대하는 흑산적, 황건적의 무리가 아직 청주, 연주, 기주, 병주, 사례주 일대에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만약 유협이 어설프게 상태 안좋은 제후에게 잡혔음 목이 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유협은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고 조조를 만났다. 이 만남으로 후한의 생명은 26년이 더 연장됐고, 이/곽은 모든 명분을 잃고 부하들에게 암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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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유협이 조조의 보호를 받은 것이 조조에게만 좋은 일이었을까 - 일국의 황제가 그 권위를 세우려면 정통성과 경제력이 필요하지만 유협에겐 경제력이 없었다. 그리고 조조는 경제력이 있었으나 정통성이 없었다. 유협은 조조를 승상에 임명해 조조가 독보적인 제후로 거듭날 수 있게 해줬고. 조조는 유협에게 경제력을 제공해 후한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제후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만약 조조가 없었다면 유협은 원소, 원술, 유표, 유언 등의 칭제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유협이 조조를 러닝 메이트로 인정하면서 후한의 영향력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회복했다.

유협이 생각보다 고분고분하진 않았다. 정사 삼국지는 위나라가 후한으로부터 선양을 받았으므로 이런 기록들이 대량으로 편집했지만. 후한서 등을 보면 -- 유협이 조조를 단독으로 불러 꾸짖은 적도 있고. 조조는 유협이 자신을 암살하지 않을까, 정말 진지하게 걱정했었다. 조조 세력은 조씨 막부와 기존 후한 관료조직이 공존하는 형태였으며 -- 조조는 죽는 그 날까지 후한 세력의 눈치를 봤다. 동승, 복황후, 위풍.. 만약 이들의 조조 축출 시도가 한번이라도 성공했으면. 어쩌면 조조는 허망하게 죽고, 유협이 조조의 업적을 받아 후한이 부활하는 결과가 나올수도 있었다. 마치 한고제가 한신을 죽이고 한신의 업적을 받아 전한을 세웠던 것처럼 말이다.

조조가 죽자 조씨 막부는 혹 여태후가 죽고 여씨 일족이 몰락한 것처럼. 후한 세력이 일거에 거병하여 자신들을 숙청하지 않을까, 고민했다는 기록도 있다. 조비가 성급하게 선양을 받아내고 구품관인법을 추진한 것도, 후한 세력을 신속하게 조씨 세력에 편입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유협이 가진 정치적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았으며 조조에게 유협은 경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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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만약에(2) 유협이 유총이나 유표처럼 -- 자신의 직할령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황제가 아니라 제후의 신분으로 거병했다면 어땠을까. 이 시대 제후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필요하고 유협이 조조처럼 명장의 자질이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정치적 승부수를 던지는 용기는 분명 있었다. 보통 망국의 군주는 무능하고, 사치스럽고, 어리석고, 잔인한 반면 유협은 일반적인 망국의 군주와는 달리 총명한 성정이었다. 여러모로 시대와 상황을 잘못 타고 난 인물이란 말씀 =3=

덧글

  • 2020/06/27 09:5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파파라치 2020/07/09 11:19 # 답글

    숭정제나 금애종, 진왕 자영의 케이스를 봐도 망국의 황제가 꼭 무능하고, 사치스럽고, 어리석고, 잔인하지는 않습니다. 보통은 본인 잘못보다는 대대로 쌓인 문제가 본인대에 터진 것에 가깝지요.
  • 말초 2020/07/09 19:12 #

    신라의 경순왕, 고려의 공양왕, 조선의 순종도 선대부터 쌓인 문제가 자기 임기에 터진 경우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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