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공명 N.O.T.E




이 사람은 촉나라 인물치곤 기록이 꽤 많은 편이다. 무려 문집이 남아서 전해지고 있으니까 (국내에도 번역됐음).

그래서 이번에는 제갈공명이 유비를 만나기 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 생각보다 건질 건덕지가 많단 말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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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은 원래 서주 출신이다. 이것이 제갈공명이란 사람의 정체성을 아는데 생각보다 많은 힌트를 줍니다만 -- 서주는 전란과 불경기에 시달렸던 후한(後漢) 말기에도 호구(戶口)는 백만이 넘고 생산량도 높았다. 동탁과 이각의 학정을 버티지 못한 삼보 (수도권)의 난민들이 대량으로 서주로 망명한 사건도 있었고, 서주의 전농교위였던 진등이 치수(治水)에 성공해 엄청난 농업 생산을 거두었다는 기록도 있다. 돈 많기로 유명했던 미축도 서주에 지역 기반을 두고 있었고. 유비나 여포, 도겸 같은 서주의 제후들이 원술, 조조 등을 상대로 물량전을 멀쩡히 치룰 정도로. 부유한 영지였다.

인구가 많은 서주는 자연스럽게 명사(名士)들도 많이 배출했지만. 원래 풍요로운 지역은 난세에 역설적으로 공격 목표가 되기도 좋았고, 그래서 각종 전쟁으로 털려 이번에는 서주의 명사들이 대량으로 남중국(南中國)으로 망명하는 사태가 터졌다. 이들 다수는 주로 양주에 망명하여 오나라에서 활약하는데 장소, 장굉, 제갈근, 보즐, 엄준 등등이 유명하고. 서주 출신이 오나라에서 고위직에 취임하거나, 시호를 받거나, 손책/손권의 신뢰를 받는 일이 많았다. 양주는 이때 문화 분야에서도 북중국에게 밀렸으니 손씨 입장에선 이들이 얼마나 귀중했겠는고.

제갈씨도 아마 서주의 전쟁을 견디지 못해 남중국으로 망명했을 것이다. 정확한 망명 시기는 불분명하나 제갈공명의 고향인 서주 낭야국은 조조의 서주 학살을 직격으로 받은 지역이었다. 서주 학살이 제갈씨의 망명 이유가 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제갈공명의 고향이 전쟁에서 안전하지 못했던 곳임은 확실하다. 동시에, 제갈 가문이 전원 형주로 망명하진 않았다. 제갈근은 양주로 망명했는데 난세에는 일가족이 같은 제후에게 출사했다가 정치적인 다툼에 잘못 휘말리면 연좌제로 엮어 멸족될 수 있었다. 리스크를 분담하는 목적에서 제갈근은 양주, 나머지 제갈씨는 형주로 이주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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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남중국에 망명하여 그곳 토착 사족들의 질투와 겐세이를 극복하며 고위직에 취임하는 장소, 장굉 같은 명사는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기반을 다 잃어 간신히 목숨만 연명하거나. 낮은 관직으로 간신히 계급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제갈공명이 양보음을 부르며 농사를 지었다고 하는데 -- 육체 노동을 천시하는 고대 중국에서 사족(士族)이 손수 농사를 지었다는 기록은, 이 가문은 완전히 망했다는 뜻이다 ㅠ

제갈공명의 아버지 제갈규는 태수도 아닌, 태수의 보좌관인 군승이었고 일찍 사망했다 (후한 말기에는 태수를 배출한 가문도 그닥 명문으로 인정받진 못했다). 이후 제갈공명의 양육을 책임진 숙부 제갈현은 예장태수였으나, 유요의 공격에 성을 잃은 난민이었다. 그나마 제갈현이 유표와 평소 교분이 있었으나, 유표는 형주에서 황제 놀이하던 야심가였고 -- 형주에 명사(名士)나 사족(士族)이 얼마나 많은데. 제갈현 따.위.에게 큰 관심이나 지원을 준 것 같진 않다. 이후 제갈현이 형주에서 관직에 취임했다는 기록이 없고, 제갈공명이 직접 노동을 해야만 했으니. 아마 유표는 제갈현에게 집이나 소개해주는 선에서 손절하지 않았을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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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생긴다 - 제갈공명이 형주의 명문 사족들 사이에 들어간 것이다.



유표는 형주에서 황제 놀이하던 야심가였고 (2) 괴량 & 괴월은 유표에게 있어 조조의 순욱 & 순유 같은 최측근이었다. 채모도 유표가 신뢰하는 최측근이었고, 채씨 집안은 돈도 많아 북중국의 명문가에 여자를 시집 보낼 수 있었다 (태위 장온의 아내가 채씨). 방통은 정사 삼국지에서 지모(智謀)가 순욱에 버금간다는 명사이고, 방덕공은 유표가 직접 영입하려고 했던 대학자였다. 마량 & 마속, 황승언은 형주의 명문 사족이었고.

당연히 이들 가문과 결혼하려는 사람, 이들 가문과 선 한번 넣어보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을텐데 아버지도 없고, 나가리가 된 숙부가 전부였던 제갈공명이 자신의 두 누이를 괴씨, 방씨에게 시집 보내서 (그리고 본인도 황월영에게 장가가서) 형주 권력을 장악한 그들만의 세계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분명 치열한 협상과 방해가 있었을 것이다. 황씨/괴씨/방씨/마씨가 미쳤다고 제갈씨하고 결혼을 왜 하겠어. 제갈씨는 돈이 많지도 않았고, 형주에 기반을 두지도 않았고, 조상 중에 고위 관료가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해냈다. 이것은 유비가 노식의 문하에 들어간 일이나, 공손찬이 태수의 딸과 혼인한 일과는 비교가 안되는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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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갈공명은 유표에게 바로 출사하지 않았고 - 괴량이나 채모처럼 조조에게 귀순하려는 형주의 사족과도 꽌시를 관리하지 않은 것 같다. 제갈공명은 방통, 마량, 마속처럼 형주에 지역 기반을 두고 있으나, 조조에게 항복할 수 없다는 근성 충만한 사족들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제갈공명은 유비를 만나기 전부터 큰 야망을 있었던 것 같다. 황월영과의 결혼도 웃을 일이 아니라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라면 여자를 향한 욕망도 버릴 수 있는 제갈공명의 무서운 인내력이 반영된 이야기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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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ㅇㅇ 2020/07/03 09:46 # 삭제 답글

    그 때 결혼은 정치나 마찬가지였는데 가진 거 없는 제갈량이 어떻게 그 결혼사업을 해냈는지 신기하기만 하네요.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위대한 책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말초 2020/07/03 22:06 #

    연의에서 제갈공명의 지모가 과장된건 맞지만, 정사 삼국지에서도 지모가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나중에 익주에 지역 기반을 둔 촉나라에서도 수십년간 승상에 취임해 전권을 가졌거든요 - 지모가 없었다면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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