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 검증을 대충했던 촉나라 N.O.T.E





삼국지에 관한 책을 읽어보니, 책을 쓴 사람들이 이 시대는 충신(忠臣)들이 억울하게 죽고 간신들이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한다. 도덕이나 윤리는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방해가 되고) 배신이 생존의 비결이라고 한다.

완전히 틀리지 않은 말이지만, 제후들도 뒤통수에 칼 맞기는 싫었으니 자기 부하들이 배신할 놈인지 아닌지를 꽤나 꼼꼼하게 조사했고. 믿을 수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여포는 스스로 투항 의사를 밝혔는데도 사형, 허유도 적당한 시점에 사형. 우금도 정리했고. 송헌, 위속 등은 투항 후에 커리어가 끊겼고 - 장료나 서황처럼 유능한 장군들도 진급 심사에서 투항 경력으로 인한 감점을 크게 받았던 것 같다. 이 두 사람은 엄청난 무공을 세웠음에도 계급이 각기 전장군, 우장군에 그쳤지만.

하후돈과 조인은 대장군, 하후상은 형주목, 조진과 조휴는 대사마가 됐다. 하후돈이나 조인은 명장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하후상, 조진, 조휴는 무공이 서황보다 못하지만 서황보다 훨씬 계급이 높았다. 장료나 서황 입장에선 섭섭하겠지만, 조씨의 입장에선 충분히 이해가 간다. 어느날 장료나 서황이 적에게 투항하거나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반면에, 촉나라는 이런 후보자 검증을 정말 대충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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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비가 서주에 지역 기반을 둔 제후였던 시절부터, 여포를 영입하다가 서주를 다 뺏겼고. 익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는 이엄, 맹달, 법정 같은 배신자들을 중용했다. 중용도 그냥 중용이 아니라, 이엄은 제갈공명과 함께 유비의 유언을 받든 고명대신이 됐고 (제갈공명이 촉나라의 1인자라면 이엄은 2인자였다), 법정은 유비가 최측근으로 삼아 각종 작전을 다 상의했다. 리중톈 같은 학자는 유비가 법정을 제갈공명보다 더 중용했다고 주장할 정도로 =3=

그런데 법정이나 맹달은 - 결국 진급 심사에 불만을 품고 주군을 배신한 인물들이었고. 이엄은 유장이 평소에 굉장히 총애한 인물이었다. 얼마나 총애했던지 병력 일만을 주어 유비를 막게 했는데 이엄은 싸우지도 않고 유비에게 투항했다. 만약 조조나 손권이었으면 이런 이엄을 적당히 총애하다가 적당한 시점에 버렸을텐데. 유비는 그렇지 않았다. 결국 맹달은 위나라에 투항하고, 이엄은 4차 북벌에서 허위 보고를 올려 북벌 작전을 완전히 망쳤다.

배신자들을 확실히 검증하지 않는 촉나라의 전통은 유비가 죽은 후에도 개선되지 않았다. 남만에서 반란을 일으킨 맹획은 투항하자 어사중승에 임명됐고. 량주 출신인 강유는 대장군, 녹상서사에 량주자사까지 겸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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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의 경우, 이 사람은 진짜 특별하다 - 신념을 가지고 투항한 경우가 아니라, 길이 끊겨 투항했고. 가족들이 위나라에 아직 남은 상태였다. 강유의 어머니도 편지를 보내 강유의 재투항을 권유하기도 했다. 강유와 함께 투항한 곽순은 좌장군에 임명됐지만 (좌장군이 서황의 우장군보다 계급이 높다), 유선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비의를 암살했거든. 그럼 보통 곽순의 동기들을 다 조사하고 그 라인 전체를 통째로 날리는데 강유는 날아가지 않았다.

강유는 량주 출신이니 당연히 익주에 기반이 없다. 익주의 유력한 사족 가문과 결혼을 하지도 않았다. 여기에 황호, 염우 같은 간신은 물론 제갈첨 같은 충신들도 강유를 의심하거나 억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강유는 황호에게 죽을까 두려워 둔전을 핑계로 한중 전선으로 자청해서 도망쳤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촉나라는 강유를 죽이지 않았다. 이 판단은 결과적으로 맞았지만, 유선이나 촉나라 입장에서는 강유를 죽여도 이해할 구석이 충분히 있거든. 유선은 무슨 생각으로 강유를 살려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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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나라가 기록이 부족해서 이 집단이 어떤 철학으로 국정을 운영했는지, 황제나 관료들의 생각을 알기란 어렵지만. 촉나라가 배신의 경력이 있는 위험분자들을 고위직에 임명하는데 큰 경계심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만약 법정이나 강유가 여포 같은 사람이었으면, 촉나라는 진짜 허무하게 망했을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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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글 : 서서, 전예 2020-08-23 20:59:12 #

    ... 후보자 검증을 대충했던 촉나라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유교를 국학으로 지정한 이래로 유교는 쭉 중국 사상계를 장악했고 - 지식인들은 출세하기 위해서 유교를 배워야만 했다. 후한( ... more

덧글

  • 파파라치 2020/08/11 13:27 # 답글

    그냥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는지도...
  • 말초 2020/08/14 00:11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야당인 촉나라가 거대 여당인 위나라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촉에 귀순하려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포상을 할 필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검증을 약하게 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3=
  • RuBisCO 2020/08/15 09:51 # 답글

    음? 사마의가 우금 죽인건 그냥 점쟁이 헛소리 듣고 죽인거 아니었던가요.
  • 말초 2020/08/15 10:17 #

    여기서 제가 말하는 우금은 우금 문칙. 관우에게 항복했다가 다시 위나라로 돌아온 우금입니다.

    조비가 우금을 치욕스럽게 만들어 죽였습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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